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童子포도문치마

추천0 조회수 69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童子포도문치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광주 이씨의 선산묘지를 서울대공원부지로 조성하기 위해 1979년 이장하던 중 발견한 이집일의 처인 청주 한씨묘에서 발견된 수의이다. 이 대란치마는 동자포도문 또는 포도동자문으로 명명되는 직금(織金)이다. 포도와 어린 동자의 문양을 금실로 짠 놓은 것인데‚ 바닥(地)은 5배 경주자이고 무늬(紋)는 부직(?織)이다. 이와 같은 직금단은 고려대학교의 박물관에도 수장되어 있다. 이런 대란치마가 민가에서 나온 것은 청주 한씨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2녀인 의혜공주의 손녀였기 때문으로 보이며 민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화려한 궁중 의상이다. 포도문(葡萄紋)은 대개 포도덩굴을 구성한 포도당초문 형식을 말한다.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그러한 문양이 전해진 것은 8세기경으로 당(唐)나라 때 인도(印度)의 금공미술에서 영향을 받아 나타나기 시작한다. 당대에는 서역유물이 다량 유입되어 특히‚ 견직물에 나타나는 포도금문(葡萄錦紋)에는 포도덩굴 사이에 ?神이 보인다. 이 즈음에 楊貴?를 위하여 많은 직금공을 서역에서 징용하였다고 한다. 그 때 이러한 포도‚ 석류 등 서역미술의 문양이 유행을 보았을 것이다. 당대 유물인 해수포도문경(涇?葡萄紋鏡)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의 통일신라기에는 이러한 당나라 문화의 영향과 서역과의 교류를 통해 그러한 문양이 와당‚ 문양전‚ 석조물 등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려시대 상감청자에는 12세기 전반경에 많이 보이는데 포도 덩굴 사이에 동자가 매달려 노는 모습 등 민화적 풍취가 물씬 느껴지는 문양이 많다. 그러한 문양이 유행하게 되는 것은 당시 중국 원(元)나라에서 유행하였던 백동자도(百童子圖)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동자포도문(童子葡萄紋)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는 장수(長壽)와 다남(太男)‚ 다복(太福)‚ 다부(太富)를 종합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