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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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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등잔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등잔을 얹어 불을 밝힐 수 있도록 홈을 파고 대는 짧게 만들었다. <일반적 형태 > 지난날 석유나 전등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우리의 밤은 주로 등잔이나 호롱으로 밝혀졌다. 하늘과 땅이 나뉘고 거기에 사람이 발을 붙이고 살게 된 뒤로 오랜 세월을 두고 밝음을 주어 오던 불은 자연의 조화속이요 신의 권능인 것으로만 믿어 왔다. 그것이 어느 때에 사람이 사람의 손으로 불을 다스릴 수 있게 되면서 오늘날까지 불은 잠시도 사람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이렇듯이 불은 사람과 가까운 길동무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의 자리에 버금가는 믿음의 대상이기도 했다. 불의 여러 구실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어둠을 밝히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나라의 등은 세계 어느 나라의 그것에 못지 않게 다양하고 아름답다. 그런 가운데서도‚ 방안을 밝히는 것으로서는 등잔과 호롱과 촛불이 있었고‚ 밖을 비추는 것으로서는 모닥불‚ 횃불‚ 초롱‚ 조적등‚ 양각등 따위가 있었다. 등잔과 호롱에 쓰이는 기름은 명씨기름‚ 들기름‚ 콩기름‚ 아주까리기름‚ 오동열매기름‚ 물고기기름 따위가 흔히 쓰였고‚ 드물게는 참기름과 동백기름이 쓰이기도 했다. 또 심지로는 무명솜과 무명실‚ 삼실‚ 새끼 따위를 꼰 것이나 그냥 기름에 적신 것을 썼고 그 끝에 불을 붙였다. 촛불은 사치품으로서 여염집에서는 길-흉사나 기제사의 의식에만 썼으며 그 재료는 벌집에서 짜낸 초로 만든 밀초가 가장 고급품이고‚ 쇠기름이나 돼지기름과 같은 동물성 지방을 써서 만든 것은 품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특히 밀납으로 만든 상품의 초에는 화촉‚ 용촉‚ 황랍촉 따위가 있었는데‚ 화촉에는 오색물감을 들여 모란 따위의 꽃을 새겼고‚ 용촉 또한 구름 속의 오색 용을 아로새긴 것이며‚ 황촉은 누런 물감을 들인 것이다. 화촉과 용촉을 붉게 물들이는 물감으로는 중국에서 값비싸게 들여왔던 당주홍을 쓰기도 했고‚ 그 대신 우리나라에서 나는 자초를 쓰기도 했다. 화촉은 왕가의 경사나 진연상에 올랐으며 여염집이나 사대부집에서도 쓰였다. 등잔에는 접시꼴을 한 것과 팽이를 세운 모양의 두 가지가 있으며‚ 특히 팽이 모양의 등잔에는 거기서 피어 오르는 그으름 막이로 아랫것과 같은 원작을 거꾸로 매달아서 등잔갓이라고 불렀다. 가장 흔한 호롱에는 종지를 엎어 놓은 꼴의 것이 있으며‚ 그 윗부분에 꼭지가 달린 뚜껑을 덮도록 되어 있고‚ 꼭지부분은 윗부분에 꼭지가 달린 뚜껑을 덮도록 되어 있으며 빈 꼭지 부분에는 심지를 꽂기 마련이다. 대체로 등잔이나 호롱은 흰 사기로 된 것을 가장 많이 썼고 이밖에 오지‚ 백통‚ 놋쇠‚ 무쇠‚ 옥돌 따위로 된 것도 있다. 등잔이나 호롱의 흔한 꼴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원통꼴로 된 것‚ 네모진 것이나 여덟모진 것‚ 산이나 새의 모양으로 된 것도 있다. 형태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몸에 양각‚ 음각‚ 입사 따위의 기법으로 무늬나 길상문자로 장식한 것이 있어서‚ 생활에 가장 가깝고 긴한 것 가운데 하나인 물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엿보이게 한다. 그것은 마치 현대 생활의 공간에서 화려하고 호사스런 샹들리에를 즐겨 다는 심사와도 상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에 가장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등잔이나 호롱이나 초를 제자리에 놓으려고 장만했던 받침이나 걸이다. 등잔받침‚ 등잔걸이‚ 호롱받침‚ 호롱걸이‚ 등경‚ 등가‚유경‚ 촛대 따위로 불리는 이들의 가장 기본되는 생김새는 대나무 마디의 꼴을 한 것이다. 곧‚ 둥글거나 네모난 바탕이 밑에 있고‚ 가운데 가느다란 토막 기둥에 대나무 매듭을 조각하고 그 위에 네모지거나 둥근 바탕보다는 훨씬 작은 등잔과 호롱이 얹힐 만한 받침을 만들었다. 그러자니 크게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 셈인데‚ 그 길이와 너비와의 비례라든지 전체 모양에 무리가 없어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죽절 등잔이나 호롱 받침말고도 바탕을 거북으로 삼고‚ 기둥은 학이 한 다리를 깃에 감추고 서 있는 모양으로 새겨서 그 머리 위에 받침을 놓은 정교한 조각품으로 된 것이라든지‚ 바탕은 넓은 연잎을 조각하고‚ 기둥은 연꽃대로 되어 자잘한 줄기와 가는 가시까지를 세밀하게 새겨‚ 받침은 막 피어 날 듯한 연꽃으로 가늠한 것에서 옛 장인의 빼어난 솜씨가 보이는 것도 있고‚ 나무 토막을 아무렇게나 깎아서 만든 우악스럽고 힘찬 것도 있으며‚ 선비가 소일 삼아 장도로 온갖 기하학적인 무늬를 정성들여 아로새긴 것도 있다. 이들의 재료는 오지‚ 사기‚ 나무‚ 벽돌‚ 놋쇠‚ 무쇠‚ 구리‚ 옥돌같은 갖가지가 있고‚ 형태가 저마다 다르며‚ 크기에서도 한길이 넘는 것에서부터 한뼘도 차지 않은 것까지 다양하며‚ 솜씨는 더더구나 천층만층이다. <참고문헌> 뿌리깊은 나무 1977년 1월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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