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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명(醴泉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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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예천명(醴泉銘)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위징(魏徵)이 짓고 구양순(歐陽詢)이 글씨를 쓴 비문. 구성궁은 당대(唐代)제실(帝室)의 이궁(離宮)으로 수(隋) 문제(文帝) 때 지어진 인수궁(仁壽宮)의 이름을 당(唐) 태종(?宗)이 수복(修復)후에 구성궁(九成宮)이라 고쳤다. 당(唐)의 태종(?宗)과 고종(高宗)이 피서를 하던 곳인데 632년(정관(貞觀)6년) 태종(?宗)이 황후와 함께 이궁(離宮)안을 산보하다가 우연히 발견 하였다. 변려체의 화려한 문장으로 모두 1109자(字)로 되어있다. 당(唐)의 정(貞)관(觀)6년에 새긴 것으로 글을 53세의 위징(魏徵)이 짓고 76세에 구양순(歐陽詢)이 글씨를 썼다. 이 비는 <화도사탑명(化度寺塔銘)과 더불어 구양순(歐陽詢)의 이대표작(二代表作)이며 당나라 때 해서의 대표작이다. 우리나라에도 통일신라 때 부터 많은 사람들이 서예를 배우기위한 교과서로 사용하였고 고려 때 구양순(歐陽詢)체(體)가 유행한 큰 이유 중에 하나다. 조선에 이어 현재에 이르기 까지 많은 서예가들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있는 비문이다. 비문을 탁본하여 적당한 크기로 가위로 잘라 두꺼운 종이에 붙여 책을 만들어 보관하고 사용한다. 책 뚜껑에 오동나무판을 대어 사용하기도하고‚ 황색표지에 밀납을 먹여 벌레와 습기에 의한 부식을 방지하고 붉은 실로 다섯군데를 매고 능화판을 찍어 문양을 냈다. 형식은 조선초기에는 권(券)자(字)본(本)‚ 첩(帖)정(幀)호접(胡蝶)장(?)‚포(袍)배(背)장(裝)‚ 선(線)장(裝) 등으로 변천 되어 왔다. <참고문헌> 중국법서선 31(구성궁예천명 일본‚ 이현사) <사진자료> 중국법서선 31(구성궁예천명 일본‚ 이현사)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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