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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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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만장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고인을 애도하여 지은 글을 적은 깃발. 일명 만사(輓詞)·만시(輓詩)·영결시(永訣詩)라고도 하는데‚ 이는 만장에 쓰는 내용을 가르킨다. 만장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만장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친지가 죽으면 상여의 뒤를 따라가며 애도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를 만가(輓歌)라고 하였으며‚ 옆에 따르던 사람이 그것을 기록한 것이 만장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성리학과 함께 들어온 주희(朱熹‚ 1130∼1200)의 《가례 家禮》가 유입됨으로써 그 모습을 갖추었을 것으로 보인다. 만장(輓章)은 생전에 고인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이 고인을 기려 영전에 바치는 글인데‚ 행상(行喪‚ 시신을 장지로 운반하는 일) 때는 상여 앞쪽에 위치한다. 만장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고인의 학덕·이력·선행·문장·직위 등에 대한 칭송과 고인과 글쓴이와의 친분관계 등을 표시하고‚ 평소에 다정하게 지냈던 일이나 특별한 일을 떠올려 두 사람의 관계를 밝히기도 한다. 먼저 부의(賻儀)처럼 만사(輓詞)를 받아 이를 다시 큰 종이나 만장 기에 옮겨 적는다. 그리고 대나무에 깃발 형태로 매다는데‚ 특별한 형식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백색·청색·홍색·황색 등 다양한 색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만장의 수는 고인의 학문‚ 사회적 지위와 활동범위‚ 친분관계를 읽을 수 있는 자료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지위와 활동범위에 따라 만장의 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영구차의 발달로 행상의 행렬이 없고‚ 또 만사를 쓰지 않기 때문에 만장 행렬을 찾아볼 수 없다. 경북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의 박효수(朴孝秀‚ 1906 1996‚ 享年 91세) 옹의 상례(1997년 1월)‚ 경남 창녕군 모곡면 이곡리의 회정(晦正) 이종민(李宗敏) 옹의 상례(1993년 3월)‚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곡리(검제)의 학봉(鶴峯) 김성일(金成一) 종택 종부(宗婦)의 상례(1995년 12월)에 등장한 만장행렬은 만장의 전반적인 성격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예이다. <참고문헌> 우리의 전통예절(김득중‚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88) 사진으로 보는 가정의례(조선일보사‚ 1988) 관혼상제(최상수‚ 태서출판사‚ 1987) 관혼상제(일신서적공사‚ 1984) 한국민속학개론(박계홍‚ 형설출판사‚ 1992) 한국인의 일생 (이광규‚ 형설출판사‚ 1985) 육례이야기(권광욱‚ 해돋이‚ 1994) <사진자료> 만장의 형태(사진으로 보는 가정의례‚ 조선일보사‚ 1988‚ 151쪽) <유사관련용어> 만시‚ 만사‚ 영결시‚ 발인‚ 방상씨‚ 혼백‚ 명정‚ 공포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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