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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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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거문고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거문고는 가야금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꼽힌다. 거문고는 울림통‚ 현(鉉)‚ 궤‚ 술대‚ 안족(雁足)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유물은 울림통의 뒷판을 조각으로 이어 만든 거문고이다. 거문고 울림통은 앞면과 뒷면을 각기 다른 재료로 만든다. 앞면에는 오동나무를‚ 뒷면에는 밤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를 쓴다. 울림통 위에는 명주실을 꼬아 만든 6 줄의 현(鉉)을 얹는데‚ 제 2‚ 3‚ 4 현은 16개의 괘 위에 걸치고 제 1‚ 5‚ 6현은 안족(雁足)으로 받쳐 놓는다. 괘의 재료는 특별히 가리지 않고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는데‚ 각기 크기가 다른 괘는 순서대로 울림통 위에 세워 아교로 붙인다. 술대는 해죽(涇竹)이나 산죽(山竹) 등 굵기가 적당한 대나무로 깎아 만드는데‚ 길이는 18∼20센티미터‚ 두께는 8밀리미터 내외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거문고와 유사한 악기가 묘사되어있는데‚ 그 중 분명하게 거문고임을 보여주는 것은 무용총(舞踊塚)의 벽화이다. 여기서 거문고는 네 개의 현에 열일곱 개의 괘를 갖는다. 한편 <<삼국사기>> `악지(樂志)`에서는 거문고의 생성과 초창기의 역사를 `처음 진(晉)나라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내 왔는데‚ 왕산악(?山岳)이 원형은 그대로 두고 많이 고쳐 만들고 100여 곡을 지어 연주하매 검은 학(鶴)이 날아들어 춤을 추었다. 그래서 악기 이름을 현학금이라 하였는데 뒤에 현금이라 불리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 이후 거문고는 대표적인 향악기(鄕樂器)의 하나로‚ 궁중의 합주와 선비들의 풍류놀음 또는 선비들의 교양음악으로 전승되었다. 조선시대에 거문고는 궁중의 향악 연주에 편성되었고 선비들의 교양필수로 정착되어서 풍류문화를 주도하였다. 이때 거문고가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었으며‚ 거문고가 음악을 이끄는 줄풍류 양식이 창출되었다. 문고를 연주하는 방법은‚ 왼손으로 괘를 짚어 음정을 잡고‚ 오른손 식지(食指)와 장지(長指) 사이에는 술대를 끼우고 줄을 내려치거나 올려 뜯어 소리를 낸다. 연주자세는 오른발이 왼쪽다리 밑으로 들어가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그리고 대모 끝의 둥글게 팬 부분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왼쪽무릎으로 거문고의 뒷면(腹板)을 받쳐 비스듬히 세운다.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은 왼손을 응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연주자세이다. 거문고의 종류에는 정악용 거문고와 산조용 거문고가 있다. 구조는 거의 같고 크기가 약간 다른데‚ 정악용 거문고가 산조용 거문고보다 좀 크다. 그리고 현존하는 유물 중에는 여성 거문고 주자들이 연주하던 크기가 작은 거문고가 있는데‚ 이것을 여금(女琴)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한국악기(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81)‚ 한국악기(송혜진‚ 열화당‚ 2001) <사진참고> 우리민속도감(예림당‚ 1999)‚ 한국악기(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81)‚ 한국악기(송혜진‚ 열화당‚ 2001) <유사·관련 용어> 칠현금‚ 현학금‚ 현금‚ 현악기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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