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등잔(燈盞)

추천0 조회수 24 다운로드 수 1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등잔(燈盞)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초를 꽂아놓는 등기구의 일종. 촛농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접시 모양의 받침을 만들고‚ 중앙에는 초를 꽂을 수 있도록 뾰족한 심을 만든다. 중국 한나라 때의 유적에서 청동촛대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에 초와 촛대가 사용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촛대와 안압지에서 출토된 초가위가 있어 늦어도 통일신라 때는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촛대는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으나 보편화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이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초의 생산이 어려워 그 가격이 매우 비쌌으므로 왕실이나 상류층에서 주로 의식용과 실내조명용으로 사용되었고‚ 일반 서민들은 제사와 혼례 또는 종교의식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식에 쓰일 때는 쌍을 이루어 사용되었다. 기본 형태는 복발형(復發形)의 받침이나 원형·사각형·팔각형 등의 불판 위에 곧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짧은 초꽂이가 달린 받침접시를 두었다. 높이는 10cm 내외의 소형에서 2m가 넘는 대형까지 다양하다. 촛대는 일상생활용·의식용‚ 그리고 수초 등으로 나뉘는데‚ 생활용 촛대는 형태가 다양하고 장식을 한 것이 많다. 대형촛대는 궁중의식에 주로 사용했는데‚ 생활용보다는 형태가 단순하다. 수초(手燭)는 가정에서 잠시 일을 볼 때 사용하는 소등잔과 같은 역할을 하던 것으로 넓은 초받침 접시에 손잡이가 있으며‚ 다리가 있는 것도 있다. 이밖에 사용하지 않을 때는 분해하여 보관이 용이하도록 제작된 조립식 놋쇠 촛대도 있다. 촛대는 나무·청자·백자·청동·철·옥석(?石) 등으로 만들며‚ 화선이나 불판 등에 점선문(點線紋)·태극문(?極紋)·박쥐문·만자문(卍字紋) 등의 문양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이 유물은 청화백자삼족촉대(靑華白磁三足燭臺)로 2중의 초받침과 죽절형 간주 및 하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받침은 종지 형태로 구연 3곳에 돌기가 있으며 내부에는 유제 초받침과 초꽂이촉이 있다. 하반은 저부에 3개의 발과 낮은 굽이 달린 대접 형태로 기벽이 두꺼우며‚ 초받침과 하반의 구연에 청화로 선을 돌렸다. 하반의 측면에는 2개의 선대(線帶)를 구획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초문을 그려 넣었다. 초받침 지름은 7cm‚ 하반 지름은 13.6cm이다. <참고문헌> 이조 후기 목등기의 조형성에 관한 연구(이규항‚ 이화여대 석사논문‚ 1977) ; 조선조 등기구에 관한 연구(이태숙‚ 숙명여대 석사논문‚ 1986) ; 우리나라 전통 등기구의 조형성에 관한 연구(정승은‚ 상명여대 석사논문‚ 1993) <사진자료> 한국문화상징사전(동아출판사‚ 1992‚ p.571) 한양대학교 박물관 수장 유물선(한양대학교 박물관‚ 1995‚ p.451) <기타참고> 불의 민속(국립민속박물관‚ 1996) <유사/관련 용어> 간주‚ 등가‚ 등기구‚ 등촉‚ 박쥐문‚ 받침접시‚ 불판‚ 수초‚ 실내조명‚ 죽절형‚ 청화백자‚ 초받침‚ 촉가‚ 촉대‚ 촛대‚ 하반‚ 화선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