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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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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발(鉢)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사발(沙鉢)은 밥을 담는 그릇이다. 이 유물은 무늬가 없는 백자(白磁) 사발이다. 백자란 고령토로 그릇을 만든 후 투명한 잿물(釉藥)을 씌워서 1300℃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순백의 투명한 자기를 일컫는다. 백자의 색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철분의 양이다. 질이나 잿물에 철분이 많이 들어 있으면 순백의 백자가 되지 않고 회흑색‚ 회색‚ 갈색‚ 황색‚ 회색‚ 청색의 빛을 띠게 된다. 또한 그릇을 구울 때 가마의 아궁이나 굴뚝을 열어 놓아 산소가 많이 공급되면 철분이 산화(酸化)되어 갈색 또는 황색을 띤다. 반대로 산소공급을 차단하면 철분이 환원되어 푸른색을 머금는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세종 때 어기(御器)는 백자를 전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1445년 고령지방에 들린 도순찰사 김종서가 술상에 놓인 백자를 보고 "귀현사기 심선심선(貴縣沙器 甚善甚善)"라고 감탄했다고 전한다. 이 기록들을 통해 백자의 품격을 가늠할 수 있는데‚ 세조 때는 백자에 대한 금지령을 내려 일반의 백자 사용을 금지하였다. 이것을 광해군 8년(1616)부터 일반 사대부에 한정하여 허용하였다. 그러나 조선백자에 대한 요구는 대단히 높아서 암암리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으며‚ 18·19세기를 지나는 동안 더욱 고급화되면서 생산량도 증가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참고문헌> 백자(중앙일보사‚ 1990)‚ 사기장(국립문화재연구소‚ 1999)‚ 우리의 옛 도자기(윤용이‚ 대원사‚ 1999)‚ 이조도자(정양모‚ 동화출판공사‚ 1973)‚ 조선백자(김영원‚ 대원사‚ 199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찬부‚ 1989)‚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연구원‚ 두산동아‚ 1999) <사진자료> 조선백자항아리(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985)‚ 조선시대도자명품도록(덕원미술관‚ 1992)‚ 한국의 도자기(건국대학교‚ 1991) <유사관련용어> 도기‚ 분청사기‚ 백자‚ 순백자‚ 백자병‚ 백자편병‚ 백자청화국문육각병‚ 백자청화산수문사각병‚ 청화백자팔각단지‚ 청화백자 기름병‚ 백자광구병‚ 백자 앵무잔‚ 청화백자발‚ 청화백자화병‚ 백자호‚ 백자무문호‚ 백자명기‚ 백자삼층육각태호‚ 태청백자완‚ 채문기‚ 청자‚ 청화백자‚ 흑자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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