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양주산대가면(楊州山臺假面)-둘째먹승탈

추천0 조회수 71 다운로드 수 1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양주산대가면(楊州山臺假面)-둘째먹승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양주별산대놀이 제5과장 팔목중놀이에 등장하는 탈. 바가지탈로서 얼굴 바탕은 주홍색으로 이마에 2개의 주름을 표현하였고‚ 눈썹은 눈보다 크며 흑백선을 여러 개 그려 넣었다. 눈은 흰색으로 눈꼬리가 쳐져 있으며‚ 양볼에 큰 점 2개를 돌출시켜 표현하였다. 턱이 입을 가린 형태로 탈보와 턱가리개를 부착하고 탈보 모서리에 종이꽃을 달았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경기지방에서 전승되어 온 산대도감극의 한 분파로서 산붕 또는 채붕이라고도 한다. 양주별산대놀이는 가무적 부분과 묵극적인 몸짓‚ 재담이 포함된 연극적인 부분으로 나뉘어 상연되었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모두 8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과장은 상좌춤‚ 제2과장은 상좌·옴중놀이‚ 제3과장은 옴중·먹중놀이‚ 제4과장은 연잎·눈끔적이놀이‚ 제5과장은 팔목중놀이(제1경 염줄놀이‚ 제2경 침놀이‚ 제3경 애사당법고놀이)‚ 제6과장은 노장놀이(제1경 파계승놀이‚ 제2경 신장수놀이‚ 제3경 취발이놀이)‚ 제7과장은 샌님놀이(제1경 의막사령놀이‚ 제2경 포도부장놀이)‚ 제8과장은 신할아비·미얄할미놀이로 되어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파계승과 몰락한 양반‚ 무당·하인·평민 등을 등장시켜 현실 폭로와 풍자‚ 파계승에 대한 풍자‚ 양반에 대한 비판‚ 평민들의 생활 실상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놀이는 보통 밤 10시경에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피리·젓대·장고·북·꽹과리 등이 반주악기로 사용되었다. 산대도감극의 기원은 고려 초기 팔관회로 추정되며‚ 양주별산대놀이는 약 2백 년 전부터 해마다 4월 초파일과 5월 단오에 서울 사직골 딱딱이패를 양주에서 초청하여 공연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지방순회 등의 이유로 공연약속을 어기자 양주골의 아전들이 사직골 딱딱이패를 본떠 탈을 만들고 공연을 하였다. 당시 양주는 교통의 요지이고 한강 이북에서 가장 큰 고을이어서 놀이가 발전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이 때 중심인물은 양주 최초의 가면제작가인 이을축이었다. 먹중은 속이 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곧 파계승을 의미한다. 먹중은 제2과장에서 옴중과 등장하여 그와 함께 재담을 함으로써 파계승에 대한 풍자를 보여주며‚ 제4과장에서 연잎·눈끔적이에게 파계승인 까닭에 벌을 받는다. 제5과장에서도 역시 염불을 희화화시키고 애사당과 놀아남으로써 파계승의 모습을 여실히 표현한다. 먹중들은 용장삼·붉은 띠·회색행전을 입고‚ 이들의 탈은 주홍색·갈색·연갈색 바탕으로 각각 색은 다르지만 형태는 거의 비슷하다. <참고문헌> 한국의 탈춤(이두현‚ 일지사‚ 1979) 중요무형문화재해설(문화재관리국‚ 1986) 탈(심우성‚ 대원사‚ 1994) 한국가면극(전경욱‚ 열화당‚ 1998) 해학과 익살의 탈(한국박물관연구회 엮음‚ 문예마당‚ 1999) <사진자료> 상기 참고문헌에 사진자료 다수 포함 산대탈놀이(서연호‚ 열화당‚ 1987 <비디오/CD롬 자료>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문화재청‚ 2001) <유사/관련 용어> 노장‚ 딱딱이패‚ 목중‚ 묵승‚ 바가지탈‚ 별산대‚ 산대놀이‚ 산대도감극‚ 산붕‚ 양주별산대‚ 연잎‚ 완보‚ 채붕‚ 파계승‚ 팔목중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