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청화백자호

추천0 조회수 86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청화백자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특징> 청화안료와 진사를 사용한 백자화병이다. <백자의 종류> 백자는 순백색의 바탕흙위에 투명한 유약을 씌워서 번조한 자기로.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함께 일부가 만들어졌으며‚ 그 수법은 계속 이어져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백자는 무늬를 표현하는 수법‚ 물감의 종류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순백자(純白瓷):그릇 표면을 싸고 있는 유약과 색조 및 그릇을 형성하는 선이 순백자의 생명이다. 순백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고려시대 백자의 계통을 이은 것으로 부드러운 곡선의 기형을 이루고‚ 유약은 투명하여 바탕흙과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 유약이 떨어지는 수가 있다. 또 하나는 원(元)나라 때부터 고려자기에 영향을 끼쳤던 유형으로 유약이 대체로 얇게 입혀져 백색으로 발색되며‚ 때로는 약간 청색을 띠고 있는 것도 있다. 그릇 모양은 풍만하여 양감이 있고‚ 유약은 은은하게 광택을 낸다. 순백자는 다른 빛깔로 장식하지 않으나‚ 형태 자체에 변화를 주며 부분적으로 장식물을 첨가하거나 혹은 투각(透刻)수법으로 무늬를 표현하는 수가 있으며‚ 표현한 종류에 따라 ① 소문백자‚② 양각백자‚③ 음각백자‚ ④ 투각백자‚ ⑤ 상형백자등으로 구분된다. ① 소문백자:그릇 표면에 전혀 장식 무늬가 없고 백색의 단일색으로 된 것이다. ② 양각백자:순백자 위에 양각수법으로 무늬를 나타낸 것을 말한다. ③ 음각백자:순백자 위에 음각으로 무늬를 장식한 그릇이다. 부분적으로 음각 수법을 한 것은 있으나‚ 음각 수법만으로 표면을 장식한 예는 매우 드물다. ④ 투각백자:여러 무늬를 투각 수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무늬를 한결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청화를 칠하는 경우도 있다. ⑤ 상형백자:고려청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어떠한 형태를 본떠서 만든 것이다. 2) 청화백자:백토로 기형을 만들고 그 위에 회청또는 토청이라 불리는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린 다음 그 위에 순백의 유약을 씌워서 맑고 고운 푸른색의 무늬가 생기게 만든 자기이다. 코발트는 당시 한국에서는 채취하지 못하였으므로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하여 중국에서 수입하였다. 코발트 안료는 회청 또는 회회청이라 불렀으며‚ 이것으로 만든 자기를 중국에서는 유리청또는 청화백자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화사기또는 청화사기라고도 불렀다. 중국의 청화백자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1428년(세종 10) 명나라에서 보내온 것이다. 한국에서 청화백자를 번조하기 시작한 것은 1457년(세조 3) 중국에서 회청이 수입된 뒤부터이며‚ 《세조실록》에 의하면 1465년(세조 11)에 최초의 제품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모양이 구형에 가까워져 양감이 있으며‚ 목이 길어지고 표면에 모를 낸 각병의 형식이 나타난다. 무늬에 있어서도 표면에 공간을 많이 남기던 초기에 비하여 굵은 필선으로 표면 전체를 충분히 활용하였으며 화재도 추초무늬와 같은 15·16세기의 가냘픈 무늬에서 용·소상팔경·십장생 등을 그렸다. 19세기의 청화백자는 조선시대 백자의 최후를 상징하듯이 표면이 거칠고‚ 유조는 회색이 많았으며‚ 목이 높고 몸이 길어 불안정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청화의 안료는 서양에서 양청이라는 안료가 수입되어 그릇 표면을 메우다시피 그림을 그렸으며‚ 무늬도 저속하고 안일하여 격을 잃고 있다. 청화백자의 기형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구에서 문인 계급에게 공급되었던 문방구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항아리·접시·사발·떡살 등의 생활용품과‚ 병·주전자·잔 등의 주기필통·연적·필세·필가 등의 문방구‚ 묘지·인형 등의 명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청화백자에 그리는 무늬는 시대 또는 그릇의 종류에 따라 각양 각색의 그림이 그려졌으며 중기 이후부터는 매우 복잡해져 여러 식물·동물·산수·십장생·문자 등을 복합적으로 그려넣었다. 대체로 초기의 문양이 간결하고 청초한 데 비해 시간이 흐를수록 둔하고 번잡하하였다. 철회백자(鐵繪白瓷):백토로 그릇을 만들어 낮은 온도에서 초벌구이를 해내고 그릇 표면에 산화철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백색 유약을 입혀 번조한 것으로 백자에 다갈색‚ 흑갈색 계통의 무늬가 나타난 자기이다. 한국에서 백자에 철분안료로 무늬를 입힌 것은 고려시대부터였으며‚ 조선 전기에는 주로 묘지에 쓰였으나 일반화되고 세련미를 띠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로 보인다. 철회백자는 대개 광주관요와 지방민요에서 생산된 두 가지로 구분된다. 광주관요의 것은 잘 수비된 백토와 양질의 백자유에 사실적인 무늬가 주로 시문되어 포도덩굴·대나무·운룡·매화 등이 세련된 필치로 나타나고‚ 지방민요의 것은 바탕흙과 유약이 각기 특색을 지니고‚ 반추상화된 초·죽·용 무늬 등이 자유분방하게 묘사되어 있다. 철·철화·철사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들어서서 붙여진 명칭이고‚ 원래 한국에서는 석간주라고 하였다. 가마터로는 경기도 광주시 일대의 조선 중기 요지 및 북한산록‚ 괴산·철원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4) 진사백자(辰砂白瓷):도자기 바탕에 산화동 채료로 그림을 그리거나 칠한 뒤 백자유약을 입혀서 구워내면‚ 산화동 채료가 붉은색으로 발색되는 자기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사기그릇을 주점사기‚ 진홍사기라고도 불렀으며 진사백자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진사백자는 고려시대 중엽부터 사있다. 1469년(예종 1)에는 전남 강진산토청으로 청화백자가 생산되었고‚ 그 후 중국에서 수입한 회청이 함께 사용되었다. 청화백자는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번조되었으며 이 일대에는 수많은 관요가 있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거듭 변천하였다. 대체로‚ 15·16세기경의 청화백자는 청화의 안료를 얻기가 어려운 때이므로 안료를 아껴 쓴 흔적과 사용하는 데 서툰 점을 볼 수 있으며‚ 그릇의 형태는 항아리의 경우 어깨의 선이 부드러워지고‚ 병은 수직으로 올라가는 긴 목으로 아래 부분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굽에서부터 곡선을 그리며 위로 퍼져나간 대접 등은 조선시대 도자기의 새로운 형태를 나타낸다. 17 ·18세기의 청화백자는 넓은 어깨가 아래로 내려와 전체의용되었으며 가장 흔하게 쓰여진 것은 조선 후기인 18∼19세기 무렵이다. <참고문헌>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