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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집
- 저작물명
- 유고집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30
- 분류(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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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 농암선생유고(聾庵先生遺稿)와 백촌선생유고(白村先生遺稿) 합부이다. *농암 이현보(李賢輔:1467∼1555) 본관 영천(永川). 자 비중(仲). 호 농암(聾巖) ·설빈옹(雪翁). 시호 효절(孝節).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의 벼슬과 검열(檢閱)을 거쳐 1504년 정언(正言)으로 있을 때 서연관(書筵官)의 비행을 공박하여 안동으로 귀양 갔다. 1506년 중종반정 후 지평(持平)에 복직‚ 밀양 ·안동의 부사‚ 충주목사를 지냈다. 1523년(중종 18) 성주목사 때 선정(善政)을 베풀어 왕으로부터 표리(表裏)를 하사받았고 병조참지 ·동부승지 ·부제학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1542년 호조참판‚ 이듬해 상호군이 되고 자헌대부에 올랐다. 1554년 중추부지사가 되었다. 10장으로 전해지던 어부사(漁父詞)를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하며‚ 예안(禮安)의 분강서원(汾江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농암집》이 있다. *백촌 金文起(김문기‚ 1411∼1456) 본관 김녕(金寧). 자 여공(汝?). 호 백촌(白村). 초명 효기(孝起). 시호 충의(忠毅).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였다. 1430년 예문관검열(檢閱) ·정언(正言) ·함길도관찰사를 역임하고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1456년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이 주동한 단종복위(端宗復位)의 모의에 가담하였다가 모의가 발각되자 고문에 굴복하지 않다가 이개(李塏)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영조 때 9대손 정구(鼎九)의 송원(訟寃)으로 복관되었으며‚ 경북 김천시 지례면(知禮面)의 섬계서원(剡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엠파스백과사전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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