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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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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최중희 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석재 최중희> 최중희(1896-1990). 근대서화가.송정출생. 호는 석재. 13세에 소남 이희수에게 사사하여 조선후기 서도 예술의 맥을 이은 최후의 인물. 그는 1895년 12월19일 북평 송정(지금은 동해시 송정동 386번지)에서 최상하(崔相?)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강릉 최씨 시조로부터 34손이며 동해‚삼척 입시조(入 ?祖)이며 조선 중종 1535년 무과에 급제하여 좌부장(左部長)을 지낸 최응수의 14손이다. 16세때 삼척 심씨와 결혼하여 2남1녀를 두고 팔십 평생을 송정동에서 거주하며 제자 교육과 서예에 힘쓰시다가 그의 집이 동해 항구지역에 편입되어 철거되어서 강릉 포남동으로 이주하여 노후를 지내다 1990년 8월24일 돌아가셔서 명주군 구정면 젭지리 선산에 묻히니 향년 96세이다. 96세의 일기를 살면서 평생을 글씨와 제자교육과 작품활동을한 석제는 오직 서예만을 위해 태어나 큰 발자욱을 남긴 사람이다. 7세때부터 아버지에게서 천자문과 붓글씨를 배웠으며 11세때 단봉에 있는 심진하의 서당에서 정식으로 공부에 입문한다. 구한말의 무관으로서 심충의 의관을 지낸 심진하의 부친인 심익서는 통정의 벼슬을 지냈으며 그의 집은 유형문화재 82호이다. 심진하는 계남의 큰아버지이며 석제의 장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학문의 기초를 쌓고 24세때인 1918년 6월 만제 홍낙섭의 서당에 들어가게 되는 행운을 얻어 6년 동안 피나는 글씨공부를 하여 해·예·전 ·행 ·초는 물론 팔분체 추사체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북평의 바다와 전천하류가 합류하는 곳인 동해항 남쪽 구미산이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처진 절경위의 호해정(湖涇亭)은 그의 필력이 왕성하던 시절의 작품이다. 소남을 위시한 옛 명필들의 서체교본인 법첩2권과 제자들의 교육을 위해 직접 쓴 추사체교본과 전서체 교본2권 「石齊家藏석재가장」이라는 제목으로 남아 있으며‚ 그가 남긴 현판(縣板)및 자액(字額)은 관해정(觀涇亭)‚ 호해정(湖涇亭)‚관동기관(關東套觀)‚송파정(松波亭)‚봉황정(鳳凰亭)‚죽서정(竹西亭)‚동해비각(東涇碑閣)‚영은재등이 있다. <참고문헌> 실직문화 2집‚ 삼척문화원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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