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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화살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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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돌화살촉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돌화살촉 : 돌로 만든 화살촉. 석촉(石鏃).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돌화살촉(石鏃)이 마연(磨硏)의 수법으로 제작된 예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볼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된 것이고‚ 다음 초기철기시대에도 일부 지속된다. 석재로서 혈암(頁岩)‚ 이암(泥岩)‚ 편암(片岩)‚ 판암(坂岩)‚ 혼펠스 등 다양한 재료가 이용되었다. 길이가 5㎝ 내외의 것이 가장 많으나 긴 것은 10㎝를 넘는 것도 있다. 돌화살촉 형식은 대개 화살대와 결합하는 부분의 슴베(莖)가 있는가에 따라 우선 크게 유경식(有莖式)과 무경식(無莖式)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무경식석촉은 촉신(鏃身)의 단면이 편평육각형으로‚ 밑으로 내려가면서 다소 오므라들고 기부(基部) 중앙에 깊숙한 홈을 파서 화살대와의 결합을 용이하게 만든 쌍각촉(雙脚鏃)‚ 신부(身部)가 길지 않고 기부를 만입(灣入)시킨 삼각만입촉(三角灣入鏃)‚ 그리고 신부의 폭이 다소 넓어지고‚ 저변이 직선으로 끊어진 삼각촉(三角鏃)이 있다. 유경식석촉은 촉신의 단면은 마름모꼴로‚ 경부(莖部)와 신부(身部)의 경계가 뚜렷하다. 유경식은 다시 일단경촉(一段莖鏃)‚ 이단경촉(二段莖鏃)‚ 세장유경촉(細長有莖鏃)으로 분류된다. 일단경촉은 경부가 일단인 것으로‚ 그 단면은 육각형‚ 원형‚ 장방형 등이 있다. 양쪽 날개는 미늘을 이루기도 하고‚ 경부가 길게 발달된 형식도 있다. 경부가 이단인 이단경촉은 슴베부분(莖部) 상단은 단면이 육각형이지만‚ 하단은 장방형 혹은 원형을 이룬다. 화살대와 결합되더라도 신부(身部)가 완전히 화살대 앞으로 돌출된 형식이다. 그리고 세장유경촉은 촉신부의 폭이 좁고 길며‚ 경부가 짧은 형식이다. 이밖에 경부의 단면이 육각형이고‚ 평면이 뾰족하거나‚ 장방형을 이룬 형식도 있다. 한편 유경과 무경의 중간형으로 화살촉 신부의 횡단면은 마름모꼴이며‚ 신부와 경부가 뚜렷한 구별이 없는 형식도 있다. 이 중간 형식에는 전체적인 형태가 긴 버들잎형을 이루고 있으며‚ 양변에 꺾어진 곳이 없이 기부로 내려온 형식‚ 그리고 전체가 긴 마름모꼴을 한 형식 등이 있다. 유경식 중에 쌍각촉은 함남 회령 오동(五?)‚ 평남 북창 대평리(?坪里)‚ 경기 파주 옥석리(?石里) 집자리 등에서 출토되는데 민무늬토기(無文土器)와 공반하는 것은 적고‚ 그 대부분은 신석기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삼각만입촉은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중부지방에서는 이단경식석촉과 함께 출토되는 예가 많이 있다. 청동기시대 후기 혹은 초기철기시대 후기에도 계속 사용되어 그 하한은 기원전후한 시기까지 내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삼각촉은 주로 서고인돌 등까지 분포되어 있다. 긴마름모꼴 형식은 무덤의 부장품으로 주로 출토되고 있는데 중부지방에서는 춘천 천전리(泉田里)‚ 단양 황석리(黃石里)‚ 영동 유전리(兪田里) 고인돌 등에서 출토되고 있다. 유경식 중에 일단경식은 돌화살촉 중에서 가장 넓은 범위에 분포하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가장 오래 지속된 형식이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제작 사용되었는데‚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어 각기 지방적인 특색을 가진 채 사용되다가 기원전후한 시기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서북지방에서는 미늘이 발달한 형식이 많이 있고‚ 팽이형토기 유적에서는 버들잎형(柳葉形)에 경부만 재차 가공한 형식이 있으며‚ 충청지방에서는 경부 끝이 뾰족한 형식이 있다. 이단경식은 대동강유역‚ 중부지방‚ 충청지방에 밀집되어 있다. 팽이형토기 유적에서는 주로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중부지방에서는 집자리에서 출토되고 있다. 세장한 유경촉은 충청이남에 한정되어 있으며‚ 고인돌과 돌널무덤(石棺墓)의 구별이 없이 무덤에 부장되고 있으나‚ 집자리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어 특별히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돌화살촉이 갖는 기능은 수렵 이외에도 무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기로서 사용된 예는 한반도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傳) 읍루전(읍婁傳) 기록에 청석(靑石)으로 화살촉을 만들어 무기로 사용했다는 기록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가 있다. 또한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 무덤 유적에서 인골에 간돌화살촉이 박힌 예가 있어 무기로서 사용은 일반화된 것으로 이해된다. 어떤 형식은 분묘에서만 출토되고 있어‚ 처음부터 부장용(副葬用)으로 만들어진 예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해 무계리(茂溪里) 고인돌과 창원 외동리(?東里) 고인돌에서 간돌검과 함께 유달리 긴 유경식간돌화살촉이 다량 출토되었는데‚ 이 경우는 부장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간돌화살촉의 기원에 대해서는 청동화살촉을 모방하였다는 설과‚ 신석기시대의 화살촉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설 2가지가 있다. 무경식의 경우 이미 신석기시대에 쌍각촉과 삼각만입촉이 있으므로‚ 후자의 설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삼각만입의 청동화살촉은 물론‚ 신부(身部)의 단면이 마름모꼴을 이루고 있거나‚ 경부가 육각형을 이루고 있는 청동제 화살촉이 중국 동북부지방과 한국의 여러 곳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따라서 이와 유사한 간돌화살촉이 청동제화살촉을 모방하였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참고문헌> 韓國 磨製石劍?石鏃 編年에 關한 硏究(1982) 韓半島 磨製石鏃의 考察 (崔盛?‚ 韓國考古學報 12‚ 韓國考古學會‚ 1982) 해안을 따라서 분포되고 있으며‚ 세형동검문화와 관련이 깊은 돌화살촉이다. 동검이 출토되지 않더라도 대구 연암산(燕岩山) 등에서는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소뿔모양의 손잡이토기(牛角形把手附壺)와 공반되어 출토되므로‚ 청동기시대 후기의 것임이 분명하다 무경과 유경의 중간 형식에 속하는 화살촉으로 버들잎 모양의 화살촉은 신흥동(新興?) 집자리에서 팽이형토기‚ 유경돌검(有莖石劍)과 함께 출토되어 팽이형토기 초기부터 제작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름모꼴의 화살촉은 중부지방 특히 북한강 유역에 밀집되어 있는데‚ 그 분포를 보면 북한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오다가 다시 남한강 상류로 올라가면서 출토되고 있고‚ 남쪽으로는 대구 대봉동(?鳳?) 우리 나라 磨製石鏃의 硏究 (任世權‚ 韓國史硏究 17‚ 韓國史硏究會‚ 1977)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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