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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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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신주상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신주(神主)란 죽은 이의 위패(位牌)를 말한다. 대개 밤나무로 만드는데‚ 신주상은 바로 이 신주를 모셔두는 상이다. 다리가 긴 작은 의자처럼 생겼다. 신주상은 제례에 쓰이던 그릇 및 관련 도구-반기‚ 갱기‚ 촛대‚ 향로‚ 잔‚ 잔대‚ 탕기- 들과 같이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제례를 지낼때 제례상의 뒤에 놓여졌다. 조상숭배를 중시하고 제례를 엄격하게 행했던 조선시대 사대부가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보존되고 관리되던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당에 보관되었다. 중국에서는 이미 요(堯)·순(舜) 시대에 천신(?神)·지기(地祇)·5악(嶽)·4독(瀆)을 제사한 기록이 <서경(書經)> <사기(史記)> 등에 실려 있다. 특히 동양에서는 윤리 도덕 관념의 앙양과 함께 조상숭배가 크게 성행하여 조상에 대한 제례가 하(?)·은(殷) 시대를 거쳐 주대(周代)에 확고하게 갖추어졌다. 한국에서 제례의 시초는 부여(?餘)에서 영고(迎鼓)라 하여 12월에 하늘에 제사하였고‚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이라 하여 10월에 하늘에 제사지냈으며‚ 동예(東濊)에서는 무천(舞?)이라 하여 10월에 하늘에 제사지낸 기록이 있다. 마한(馬韓)에는 소도(蘇塗)라는 신역(神域)이 있어 솟대를 세우고 북과 방울을 달아 천군(?君)이 신을 제사지냈다. 신라에서는 남해왕(南解?) 때에 혁거세묘(赫居世廟)를 세우고 혜공왕(???) 때에 5묘(廟)의 제도를 정했으며 산천도 제사지냈다. 백제에는 동명묘(東明廟)가 있었다. 고려시대에 중국의 제도를 본떠 원구(丘:천신을 제사지내는 원형의 단)·방택(方澤:지기를 제사지내는 사각형의 단)·사직(社稷)·종묘(宗廟)·능침(陵寢)·선농단(先農壇)·선잠단(先蠶壇)·문선왕묘(文宣?廟:공자의 사당)·마조단(馬祖壇)·사한단(司寒壇:氷神을 모신 단) 등을 설치하고 예절을 갖추어 제사지냈다. 그리고 명산·대천·우사(雨師)·운사(雲師)·뇌사(雷師) 등도 제사지냈다. 조선시대에도 원구와 방택만을 제외하고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따랐다. 사가(私家)의 제례는‚ 고려시대에는 대부(??) 이상은 증조까지 3대‚ 6품(品) 이상의 벼슬아치는 할아버지까지 2대‚ 7품 이하의 벼슬아치와 평민은 부모만을 가묘(家廟)를 세워 제사지내게 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근거를 두어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고조까지 4대를 봉사(?祀)하게 했다. 오늘날에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종약원(宗約院)이 거행하는 종묘의 제향‚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서 유림(儒林)이 거행하는 문묘(文廟)의 제향‚ 유림이 거행하는 각 서원의 제향‚ 사가의 조상 제사 이외의 다른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주상은 강화도 홍사천 가장의 유물이다. 높이가 약 124㎝‚ 가로‚ 세로가 약 42㎝‚ 24㎝로 신주를 올려놓는 것이기에 좌판이 좁고 다리가 길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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