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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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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의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때 방문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앉았던 의자. <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및 103위 시성식 기념행사를 위해 방문했다. 방한 기간은 5월 3일부터 7일까지였으며‚ 여의도 광장에서 200주년 기념대회와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諡聖式:교황이 시복(諡福)된 복자(福者)를 성인의 명부에 올리고 모든 교회에서 그를 공경하도록 선언하는 행사)이 거행되었다. 이로써 성 안드레아 김대건(金?建)사제순교자를 비롯한 한국의 성인들이 비로소 전세계 교회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또 5월 5일 어린이날 광주광역시 무등경기장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기도 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본명은 카롤 보이티야(Karol Wojtyla)이며‚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출생했다. 1938년 아젤로니아대학교 철학과에 입학‚ 연극활동을 하며 안드레아 예비엔이라는 이름으로 시 ·희곡 등을 쓰기도 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연극배우생활에 전념하다가‚ 1942년 성직에 뜻을 안고 나치하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던 크라코프신학교를 졸업‚ 1946년에 사제(司祭)가 된 후‚ 크라코프대학교 신학교수 등을 거쳐‚ 1964년 크라코프의 대주교가 되어‚ 1967년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가 등위 34일 만에 죽자‚ 그 후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탈리아인이 아닌 교황은 사상처음 455년 만의 일이다. 바오로 6세의 교회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교회 안팎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식 때 내한‚ 103위 복자(福者)에 대한 시성식(詩聖式)을 집례하였으며‚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도 한국을 방문하였다. 1994년 11월에는 <3천년을 맞는 칙서(勅書)>를 통하여‚ 교회가 과거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불관용(不寬容)과 전체주의 정권에 의한 인간기본권의 유린을 묵인한 것은 잘못임을 인정하는‚ 가톨릭으로서는 진일보의 고백을 함으로써‚ 요한 23세 이후에 조성된 구 ·신교 일치운동에 한층 화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일반적 형태‚ 특징> 높이 : 165cm‚ 옆너비 : 80cm‚ 너비 : 51cm 나무로 제작되어 있으며‚ 등받이 부분과 손받이 부분은 한얀 천을 덧대었다. 술이 달린 방석이 깔려 있다. 등받이 윗부분의 중앙에는 문장을 배치하고 문장의 좌우 양쪽에 학문양을 운문과 함께 양각하였다. 등받이의 아랫부분 양쪽에 포도문이 같은 방식으로 조각되어 있다. 의자의 앞쪽에 있는 다리 두개에 당초문을 양각하여 장식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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