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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 화병
- 저작물명
- 자개 화병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31
- 분류(장르)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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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 <정의 및 설명> 나전칠기공예 螺鈿漆器工藝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려내어 기물(器物)의 겉면에 박아넣어 장식하는 칠공예 장식기법의 하나로‚ 넓은 뜻으로는 대모(?瑁)‚ 호박(琥?) 또는 상아(象牙) 등을 새겨넣어 장식하는 것을 나전이라 일컫기도 한다. 나전(螺鈿)이라는 말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한자어(漢字語)인데‚ 한국에서는 또 자개라는 고유어를 썼으며‚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 또는 자개박는다 라고 하였다. 나전에는 으례 칠(漆)이라는 말이 붙어서 나전칠기라고 쓰이는것이 보통인데‚ 대체로 칠 바탕 위에 자개를 붙이고‚ 다시 칠을 올린 뒤 표면을 연마하여 무늬가 드러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감입(嵌入)하는 기법에는 나무 바탕을 직접 새겨 상감(象嵌)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전칠기가 상례이다. 자개는 전복껍데기를 종잇장 같이 얇게 갈아서 썼으며‚ 소라껍데기 같은 것도 엷게 쓴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조개류 껍데기를 엷게 쓰는 박패법(薄貝法)은 중국 당나라 때에는 없었던 것이나‚ 대모를 아주 얇게 갈아서 뒷면에 붉은 채색을 함으로써 겉면에 비치게 하는 복채법(伏彩法;伏紅이라고도 함)은 당나라의 나전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고려나전칠기의 또다른 특징은 금속선의 사용이다. 나전칠기의 당초무늬에 있는 덩굴줄기나 무늬와 무늬 사이의 경계선 등에 다양하게 주로 은선‚ 동선‚ 주석선이 쓰였다. 조선시대 초기의 나전칠기는 고려 때의 의장(意匠)을 이어받았지만‚ 그 솜씨가 거칠어져 꽃잎과 이파리가 굵직한 모란당초 또는 연당초무늬 한 가지로 모든 면을 처리하였고‚ 대칭이 흐트러지고 공간을 많이 남기며 전체적으로 어색한 느낌이 들게 되었다. 조선 전기 나전칠기의 전형적인 당초무늬의장은 직사각형의 납작한 의함(衣函)에 그려 진 모란당초무늬를 통하여 보게 된다. 이같은 모란당초무늬의 의장성(意匠?)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일본 나전칠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임진왜란 후에는 십장생(十長生)을 주제(主題)로 한 서정적이며 회화적인 요소를 잃지 않은 것이 특색이기 도 하다. 그리고 화장구(化粧具)‚ 재봉구‚ 소반(小盤)‚ 장롱 등의 가구로 확대되어 갔다.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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