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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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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나주반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나주는 예부터 국제 무역항으로 개발되었던 영암‚ 영산포와 연결된 서남해안 평야 지역의 고장이며 일찌기 문물이 발달하였던 곳이다. 삼국시대에는 불미지국‚ 백제 때는 발라‚ 통의로 불리었으나 통일신라시대부터 나주라 일컫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에 내려와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고려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어서 이곳에 5군과 11현을 총괄하는 나주목이 있었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나주는 지형이 한양과 유사하다고 해서 소경이라 했고 토질이 비옥하고 호남 지방의 각종 문물이 모여드는 한반도 서남부의 문화 중심지였다. 게다가 서남해안의 조공품인 황칠이 나주를 통하여 공급되었으며‚ 조선왕조 이왕가(李?家)의 본관인 전주와 인접한 지역이어서 왕가 또는 집권 계층인 사대부계층과 교류가 많았던 탓인지 목공품이 유명해졌다. 그래서인지 나주반은 잡다한 장식이나 화려한 조각이 없으며 나뭇결이 그대로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생칠이 쓰이었다. 나주반은 꾸밈새는 없으나 견고하고 튼튼한 짜임과 투명하고 붉게 피어 오른 부드러운 광택의 칠이 특징이었다. 이 때문에 잘 피어오른 투명한 생옻칠의 목기를 나주산이라 말할 정도였고 실제로 나주반이 널리 사랑을 받았다. 나주반에는 4각반‚ 12각반‚ 호족반‚ 단각반이 전해 오는데 보통말하는 나주반은 보편화된 반상인 4각반이다. 반의 상판은 장방형이며 네 귀는 귀접이하여 모를 잘라 낸 형태이다. 변죽(상 가장자리)은 따로 홈을 파 낸 각재를 써서 판의 주변에 물리고 꼭 끼어서 핀이 틀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운각은 상판 아래에 단순한 온초‚ 반초의 선을 넣어 뽑은 좁은 판으로 대었는데 이 운각에 다리의 상부를 연결시키고 있다. 운각표면에 당초와 같은 간략하면서 운치있는 단순한 장식을 하기도 하나 번잡한 장식은 천시하였다. 다리는 둥글게 깍아 곧게 뽑아 내리는데 다리의 상부에 골을 깊게 파 내어 운각을 끼도록 된 짜임이다. 네 다리의 균형을 잡고 힘을 분산하기 위하여 다리 중간에 중대(가락지)를 대는데 굽은 가락지와 곧은 평가락지 두 종류가 있다. 아무런 조각이 없는 발은 촉을 달아 족대에 끼원 반을 더욱 안정되게 구성하였다. 판재는 주로 행자목을 쓰되 통판을 최상으로 쳤다. 행자목 외에도 피나무를 쓰는 경우가 간혹 있었으나 잡목은 쓰지 않았다. 다리와 운각은 단단하고 강하면서 잘 휘어지는 조선 소나무나 버드나무를 사용하였다. 다른 부재도 곳곳에 알맞는 나무를 골라 쓰는 등 지혜로운 구성의 소반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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