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화살통

추천0 조회수 218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화살통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본래 우리 민족은 활을 잘 만들고 대궁을 사용하였으며 오래 전부터 활 제작에 있어서 세계 어느 민족보다 탁월한 기교를 가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한국민족을 중국에서 `동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도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동쪽의 민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고대사에서 동이민족이 사용했던 활의 명칭을 살펴보면 숙신족은 활을 고시‚ 화살을 석노라 하였고 또 예맥민족은 단궁‚ 고구려는 백궁‚ 한나라 이후에는 낙랑궁이라고도 불렀으며 당나라 사람들은 신라의 활을 신라궁이라 하였는데 모두 지금 한국의 국궁의 전신이다. 고구려 활의 형태는 벽화 속에서 볼 수 있는데 현재 사용하는 국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한국의 전통활은 이때부터 변함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수천년동안 전쟁에서 주무기로 사용하였던 궁시는 고대 무기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형태나 효용면에서 가장 발전되지 않은 무기이기도 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사예를 중요시하였는데 무사들이 활을 잘 쏘아 전쟁업무를 수행해 나가는 데에 위력을 나타내는 것을 중요시하였으며 왕 또한 사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초기에서부터 과거시험에 문과와 더불어 무과고시를 두고 궁술을 무과의 중요한 과목으로 택하였으며 목전‚ 철전‚ 유엽전‚ 편전 등을 필수적으로 쏘게 하여 우수한 점수를 얻는 사람을 합격케 하였다고 한다. 한편‚ <경국대전> 공조 공장안에서는 활을 만드는 사람을 궁인이라 하였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을 실인이라고 하여 공조의 공장부에 예속시켜 활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총이 수입되어 활은 전쟁용 무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과거 국가적 행사로 치뤄왔던 사궁의 풍습도 없어지고 현대에 이르러 활과 촉을 제작하는 기술이 전래되고 있다. 화살은 소리화살이 이미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였고‚ 고려‚ 조선시대에 와서는 각종 다양한 화살이 사용되었는데 의식용구로만 사용되었던 명전‚ 신전 등이 있고 실전용으로는 화전‚ 편전‚ 유엽전‚ 신기전 등이 있으며 수렵용으로는 주살‚ 습사 무과시험용으로는 박두‚ 유엽전‚ 편전 등이 그 용도에 따라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활을 잘 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보조도구들이 사용되었다. 시윗줄을 당길 때 엄지손가락에 끼워 사용하는 여러 가지 깍지‚ 시위를 당길 때 옷자락을 잡아매는데 쓰였던 습‚ 완대‚ 화살촉을 뽑거나 조이는데 사용하는 촉돌이(사슴이나 염소뿔로 제작) 등이 있는데 이러한 보조도구들을 살수건에 얹어 허리에 차고 다니며 사용하였다. 화살을 담는 화살통도 여러 재료로 만들어졌는데‚ 대나무로 만든 죽(竹)전통‚ 오동나무도 만든 오동(梧桐)전통‚ 종이로 만든 지(紙)전통 지승(紙繩)전통이 있다. 본 유물은 화살통으로‚ 나무로 만들었으며‚ 현대에 제작된 것이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기능보유자 박상준의 작품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