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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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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목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목판인쇄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서기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국보 제21호) 2층 탑신에서 발견됨으로써 8세기 경에는 우리나라 목판인쇄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불경(佛經)은 신라 경덕왕 10년(서기751년) 이전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목판인쇄술의 성격과 특징을 갖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일본의 최고(最古) 인쇄물은 서기 770년에 찍은 『배만탑다라니 경』이고‚ 중국의 최고(最古)인쇄물은 서기 868년에 왕개가 찍어낸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현재 영국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가적인 종교로 정착되어 사찰을 중심으로 목판인쇄술이 더욱 발달하였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고려시대 책 가운데 서기 1007년(목종 10년)에 개경(고려왕조의 수도) 총지사(摠持寺) 에서 찍어낸 『보협인다라니경』이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받자 야만족에 대한 문화적인 대응으로 1011∼1031년에 『초조대장경』을 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장경에 대한 연구 주석서인 『속장경』은 문종의 4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수집한 것을 1091∼1101년에 교장도감(敎藏都監)에서 간행하였다. 『초조대장경』‚『속장』을 새긴 목판은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보관되어 있다가 서기 1232년(고종 19년)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버렸다. 그러자 나라에서는 불경간행을 위한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16년 간에 걸쳐 서기 1248년(고종 35년)에 완성한 것이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다. 경판(經板)이 무려 팔만 개나 되어 팔만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이라고 한다. 이 대장경은 내용과 새김이 정밀한 서각 예술품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현재 목판은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고려시대에는 그 외에도 사찰을 중심으로 경전(經典)이나 고승(高僧)의 시·문집 및 저술의 간행이 성행하면서 목판 인쇄의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의 목판인쇄물이 그대로 전래되어 판각(板刻)이 끊임없이 이루어졌고‚ 사찰보다는 관청에서 목판을 새겨 많은 책을 찍어냈다. 중앙관서에서는 유교경전 등의 책을 찍어냈고‚ 지방관서에서 책판을 새겨 중앙에 보내면‚ 중앙관서에는 이 관목으로 책을 찍어냈다. 조선초기에는 왕실 불교의 성행과 불교경전의 간행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세조(1455∼1468)때에는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불교 경전 등을 한글로 번역하여 한글과 한문으로 간행하였다. 서원(書院)에서도 강의용 책을 찍어냈다. 개인도 책판을 새겨 조상의 문집 등을 찍어냈다. 16세기부터는 민간에서 상업용 목적으로 책을 찍어내기 시작하였다. 목판 인쇄는 간행 량에 제한을 받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인쇄가 가능하므로 조선시대 말까지 매우 성행하였다. 본 유물은 목판으로‚ 시기는 조선시대 19세기이다. 용도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이 목판으로 전체적인 틀을 찍고‚ 그 안에 글을 쓰도록 하는‚ 즉 어떤 특정한 형식을 찍어내는데 사용되지 않았을까 한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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