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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운용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희원(希園) 이한철(李漢喆;1808-?)은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면서‚ 1846년 헌종어진도사(憲宗御眞圖寫)를 주관하였다. 특히 초상에 일가견이 있어 당시 조중묵과 더불어 초상화의 대가로 지칭되었다. 현존하는 작품들은 산수‚ 인물‚ 화조‚ 절지 등 다방면에 걸쳐 있는데‚ 대체로 전형적인 남종화법과 단원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 조선왕조 말기에 남종문인화풍의 유행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문자향(文字香) 또는 서권기(書卷氣)를 풍기는 높은 경지의 깔끔한 남종화를 중히 여겼다. 그는 묵란(墨蘭)과 산수를 잘 그렸고‚ 전형적인 남종문인화의 경지를 개척하여 그의 후학(後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희원 이한철(喜園 李漢喆: 1808-?)은 북산 김수철과 함께 30세가 넘어서도 매일 추사에게 나아가 수업을 받았다. 헌종 5년(1839) 여름에 추사댁에서 제자들이 서화수련하는 광경을 기록해 놓은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에서 보면 이한철은 이미 32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8살 난 우당 윤광석(藕堂 尹光錫: 1832-?)과 11살 난 형당 유재소(?堂 劉在韶: 1825-1911) 등과 함께 추사의 품평 지도를 받으며 그림 수업을 받고 잇다. 그때 추사는 그의 <층만소사도(層巒蕭寺圖)>를 보고 "요즘 사람들은 구학(丘壑:산봉우리와 계곡)의 형세에 전혀 힘을 쏟지 않는데 여기에는 기뻐할 만한 곳이 있다. 그러나 산마루의 절들은 스스로 배치할 곳이 있으니 붓 가는 대로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라 하였다. 이한철은 도화원의 화원으로 활동하면서 1846년 헌종어진도사(憲宗御眞圖寫)를 주관하였으며 스승인 김정희의 초상을 맡아 그리기도 하였다. 그는 초상에 일가견이 있어 당시 조중묵과 더불어 초상화의 대가로 지칭되었다. 이런 인물화 솜씨는 초상화에서뿐만 아니라 고사인물도(古事人物圖)와 도석인물도(道釋人物圖) 등 비교적 형사로부터 자유로운 인물 그림에서 더욱 찬연한 빛을 발하였다. 추사로부터 전수 받은 추상화법을 마음대로 구사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석준(金?準: 1831-1915)은 『홍약루회안시록(紅藥樓懷人時錄)』에서 이한철을 이렇게 회고(懷古)하리를 "희원의 채색붓 세상에 짝 없으니‚ 초상화 집집마다 신품에 들만큰 기묘하다. 만약 다시 부암객(溥巖客:은나라의 현인인 부설(溥設)이 산서성 평륙현(平陸縣)의 바위동굴에 은거했으므로 이 바위 동굴을 부씨암이라 한다. 부암객‚ 부씨암에 사는 손님이란 뜻이니 은자 부열을 일컫는 말이다.)을 묘사하게 한다면‚ 누가 꿈속에 본 사람인지 알지 못하리"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이를 해치며 하늘에서 꿈틀대고 있는 용을 나타냈는데 용은 눈이 부리부리하고 옆을 쳐다보고 있다. 머리에는 두 개의 길다란 뿔이 달렸고 발톱은 4개이다. 몸통은 구름에 가려진 모습으로써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으며 비늘을 따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용의 앞에는 여의주가 하나 공중에 떠 있다. 화면의 오른쪽 하단에 제발(題跋)을 써넣었다. 조선후기 조선남종화풍을 계승하고 있는 듯한 그의 일격산수화풍은 조선색이 뚜렷하여 조선색을 떨쳐버리는데 주력하던 추사에게 지적 당하기도 하였다. <춘산독왕도(春山獸往圖)>에서 평하기를 "선명하여 풍치(風致)가 있으나 집을 그리고 사람을 그리는데 있어서는 조금 티끌을 벗어나는 생각이 부족한 듯하다"라 하였다. 이러한 내용의 그림들이 간송미술관 소장의 <고주청산(孤舟靑山)>‚ <강호안거(江湖閒居)> 등이다. 그의 현존하는 작품들은 산수(山水)‚ 인물(人物)‚ 화조(花鳥)‚ 절지(折枝) 등 다방면에 걸쳐 있는데‚ 대체로 전형적인 남종화법과 단원 김홍도(檀圓 金弘道)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 본 유물은 조선 19세기에 그려진 희원 이한철의 <운룡도(雲龍圖)>이다. 종이에 수묵(水墨)으로 그렸다. 화면 가득 구름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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