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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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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모란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1853-1920)은 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의 마지막 화원으로 산수화와 어해화(魚蟹畵)를 잘그렸던 조부 밑에서 학문과 그림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1902년에는 고종의 어진도사(御眞圖寫)에 안중식과 함께 화사(畵師)로 선발되어 화명을 드높였다. 그의 산수화은 조선후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던 남종화풍에 토대를 두되 북종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강직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회화는 고려회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송‚ 원‚ 명‚ 청의 중국회화를 선별적으로 수용·소화해서 구도‚ 공간처리‚ 필묵법‚ 준법(峻法)‚ 수지법(樹枝法) 등에서 독자적인 양식을 형성하였다. 양식적 변천에 따라 초기(1392-약 1550)‚ 중기(약1550-약 1700)‚ 후기(약1700-약1850)‚ 말기(약1850-1910)의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초기에는 북송대(北宋代)의 곽희파(郭熙?) 화풍을 토대로 발전된 안견파(安堅?) 화풍이 가장 유력하였으며‚ 이 밖에 강희안(?希顔)을 중심으로 명대(明代)의 절파(??) 화풍과‚ 이상좌(李上佐)를 중심으로 남송대(南宋代)의 마·하파(馬??) 화풍‚ 그리고 최숙창(崔淡昌) 등을 중심으로 미법산수(米法山水) 화풍 등이 화단의 일각에서 그려졌다. 중기에는 안견파 화풍을 비롯한 초기의 화풍들이 계승 지속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절파계의 화풍이 가장 크게 유행하였으며‚ 영모와 화조화 부분에서 김식(金埴)·조속(趙?)‚ 묵죽·묵매·묵포도(墨葡萄) 에서 이정(李霆)·어몽룡(魚?龍)·황집중(黃執中)·허목(許穆) 등의 문인화가들이 배출되었다. 후기에는 중기 이래로 유행하였던 절파계 화풍이 쇠퇴하고 그 대신 남종문인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였으며‚ 한국의 산천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정선(鄭敾)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김홍도(金弘道)와 신윤복(申潤福) 등에 의해 풍속화가 그려졌으며‚ 청나라로부터 서양화법(西?畵法)이 전래되어 미약하게나마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말기에는 진경산수와 풍속화의 전통이 쇠퇴하고 김정희(金正喜)를 중심으로 남종문인화가 더욱 큰 세력을 굳혔으며‚ 이와 더불어 윤제홍(尹濟弘) ·김수철(金秀哲)을 비롯한 개성이 강한 화가들이 나타나 참신하고도 이색적인 화풍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일제시대의 전통문화 말살정책과 서양화의 대두 등으로 조선시대 한국화의 전통은 최말기(最末期)의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을 고비로 퇴조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승업의 영향을 받은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과 소림(小琳) 조석진(고 화원 화가인 할아버지 조정규(趙廷?‚ 1791∼?)의 밑에서 학문과 그림을 배웠다. 28세 때인 1881년 10월 영선사 김윤식(金允植‚ 1841∼1920)을 따라 안중식과 더불어 천진의 서양식 기기창(機器廠)에 기기제도(機器製圖)의 연수생으로 다녀와 견문을 넓혔다. 그 후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고종의 초상화를 그린 공으로 영춘군수(永春郡守)가 되고 정3품에 오르기도 하였다. 또 이 왕가(李?家)의 후원으로 서화미술원이 설립되자 안중식과 더불어 교수로 있으면서 후진 양성에 힘써 그들의 문하에서 한국 근대의 전통 회화를 주도하는 화가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는 산수·인물·기명(器皿)·화조(花鳥)·절지(折枝)·어해(魚蟹)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그림에 능하였고‚ 특히 산수화와 어해화에 뛰어났다. 그의 산수화는 조선후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던 남종화풍에 토대를 두되 북종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강직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趙錫晉: 1853-1920)을 비롯한 근대 초기의 작가들이 서화협회를 조직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고‚ 그들의 문하에서 배출되어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한 이상범(李象範)·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김은호(金殷鎬) 등에 의해 현대 화단에까지 맥락이 이어질 수 있었다. 한편‚ 이러한 장승업의 일파와 더불어 소치(小癡) 허련도 호남화단을 중심으로 하여 아들인 미산(米山) 허형(許瀅)을 비롯한 후손들과 그들의 제자들로 화풍이 전수되어 일문을 이루게 되었다. 장승업과 허련은 현대화단에까지 후진들에 의하여 그 계보가 이어지고 있어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본 작품은 조선시대 도화서의 마지막 화원인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 1853-1920)이 그린 모란도로‚ 시기는 조선 19세기이다. 조석진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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