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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수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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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용문수막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조선시대의 기와는 기능성이 강조되고 있는 반면에 장식성이나 미관성이 약화되는 전반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암·수막새는 직각이 아닌 둔각 상태로 암·수키와와 접합되어 있고‚ 드림새가 밑으로 늘어져 종타원형이나 역삼각형으로 변형되어 제작되고 있어서 지붕에 이어졌을 때 前代의 암·수막새보다 비흘림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장식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타원막새‚ 치미‚ 귀면기와‚ 마루막새‚ 서까래기와‚ 모서리기와 등이 거의 제작되지 않고 있다. 또한 시문 단위도 단순하며 막새의 뒷면에는 마포의 흔적인 포목흔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기와가 매우 투박한 맛을 풍기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암·수키와와 막새‚ 취두‚ 용두‚ 잡상‚ 망새 등의 마루기와 그리고 사래나 추녀에 사용되는 토수 등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기와 가운데 망새를 제외한 마루기와와 토수 등은 궁전 건축이나 관아 건물에 한정되어 사용되었고 그 일부만이 사원 건축에 쓰여졌을 뿐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일반 건축에 사용된 기와는 암·수키와 막새 그리고 암막새가 전용되어 각 마루에 이어진 망새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일반건축에 사용된 이와 같은 기와류가 당시의 민가에까지 파급되어 사용되고 있었음이 조선시대 기와의 주요한 특색이 되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기와의 전통을 이어받아 취두나 용두 등이 계속 제작되었고 잡상‚ 토수 등의 새로운 장식 기와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목기와나 부연기와 등의 서까래 기와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 대신에 단청이 크게 유행하여 목조 건물의 장식적인 특성이 어느 정도 발휘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궁궐이나 관아 건물에 한정하여 다양한 기와류가 사용되었으나 그 수요가 가장 많고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었던 사원이 억불 숭유정책으로 큰 타격을 받아 위축되었거나 폐사됨에 따라 큰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일제 침략으로 조선왕조가 멸망함에 따라 우리나라 고유의 기와 문화가 전통적인 제작기술의 단절과 함께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어서 그 맥을 오늘에 잇지 못하게 되었다. 본 유물은 형태가 종타원형에다가 소형인 용문 수막새이다. 회청경질계로 태토는 정선되어 있으며‚ 주연부의 형태가 고르고 일률적인 것이다. 용문의 형태가 단순화‚ 도식화된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 기와로 보인다. 용의 형태는 매우 간략화되어 전체적으로는 몸통이 3자의 형태를 띠고 몸통의 비늘은 1자형 능선으로 표시되었다. 용의 머리 역시 뿔과 함께 몇 개의 점을 이어 표현하였고 발에는 5개의 발톱이 남아 있다. 막새의 안쪽표면은 별로 다듬어져있지 않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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