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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산천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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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인천부산천총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지도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옛부터 그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지도제작은 지형과 지물을 그대로 모두 표기할 수 없으므로 간략한 기호·부호·그림 등으로 표시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도 지도가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자세히 는 알 수 없으며‚ 고려시대 이후의 지도가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고려시대 에는 풍수지리사상이 유행하여 지도제작에도 영향을 주어 나흥유(羅興儒)의 고려지도(高麗 地圖)외에 몇 점의 지도가 제작되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용도와 대상에 따라 세밀한 지도와 약도가 그려졌는데 도리식수(道理?數)·산천(山川)·역도명(驛道名) 등을 나타낸 여지승람식지도가 주로 제작·사용되었다. 이때의 지도에는 알아보기 쉽도록 채색을 하거나 地理志의 附圖라는 생각에서 설명 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지도는 정척(鄭陟)과 양성지(梁誠之)의 동국지도(東國地圖)‚ 백리척(百里尺)을 사용하여 만든 정상기(鄭常驥)의 동국지도(東國地圖) 등의 전국도를 들 수 있다. 또한 실제로 전국을 답사하면서 지도제작에 일생을 바친 김정호(金正?:1804∼1866)는 청구도(靑丘圖)와 대동여지도(?東輿地圖) 등을 제작하여 현존하는 전국도 가운데 가장 크고 세밀한 지도를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정치와 군사상의 필요에 의하여 지도가 제작되었기 때문에 중앙에서 관장하였으며‚ 군사기밀의 누설방지를 위해 국내 및 국외로 알려 지는 것을 금지하였다. 또 조선시대에는 전국도(全國圖)와 세계지도(世界地圖) 외에도 산천도(山川圖)·군사분계도(軍事分界圖)·수리도(水利圖)·교통도(交通圖) 등의 특수지도가 제작 사용되었다. 본 유물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인천부산천총도(仁川部山川總圖)>이다. 종이에 수묵담채(水墨?彩)하였다. 인천부의 해안선을 그리고 내륙의 산천(山川)을 나타냈으며 바다의 섬들까지도 꼼꼼히 나타내고 여기에 각각의 지명을 써넣었다. 이 지도는 일제가 조선의 물자를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인천 도호부는 남쪽으로는 문학산을 바라보고 마을 뒤로는 현재 예비군 훈련장으로 쓰이고 있는 아담한 산이 외성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골짜기를 이루다 승기천을 끼고 넓은 구월‚ 남촌 들녘이 펼쳐져 있다. 서남쪽으로 난 사모지 고개를 넘으면 대진 나루터가 나오며 서해로 확 터져 있다. 연경산(문학산 옆 봉우리‚ 현재 문학산은 군 작전 지역으로 출입할 수 없음)에 오르면 이와 같은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히 고대 국가의 도읍지로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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