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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전함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삼도수군통제사가 예하 군선들을 통제영 앞바다에 집결시켜 훈련을 하는 모습을 그린 10폭병풍. 해진도‚ 수조도‚ 포진도라고도 하며‚ 진의 형태가 한자인 첨(尖)자와 같다고 하여 첨자도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어느 화공에 의해 그려졌는지 알 수 없으나‚ 거북선이 40여척이상인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포진의 형태를 사실적이고 설명적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각 배의 하얀 깃발은 후에 덧칠을 한 것인데‚ 중앙의 본선 아래 부장(副將)이 타고 있는 판옥선(板屋船)에 빨간색 태극기를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누군가에 의해 그려진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전함도는 1946년 박물관 개관당시 소장자였던 한석만(韓錫萬)씨의 기탁으로 전시되다가 1948년 구입한 것이다. 사진이 없던 시절‚ 회화는 시대의 생생한 모습을 남기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위세를 떨쳤던 문인화 외에도 계회도 · 의궤도 · 능행도 · 사신도 · 전쟁도 · 수군도 ·궁궐도 등 기록화를 통한 기록문화가 융성했다. 기록화란 역사적 사건이나 행사 또는 인물의 행적 등을 그린 그림으로‚ 당대의 풍속·관혼상제·건축양식·복식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생생한 내용을 담고 있어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민속 자료로도 큰 가치가 있다. 또 특징적인 것은 반드시 그림의 내용에 대해 시나 글로 설명해놓고 있어 기록의 의미를 더하였다. 기록화는 당대 최고의 화원이나 화가가 그렸다. 그래서 기록화는 작품성이 뛰어난 가장 한국적인 회화라 할 수 있으며‚ 화격(畵格)도 궁체로서 격조높은 작품이 많다. 이 그림은 효용적인 기능을 가지는데‚ 전시·훈계·기능적인 측면과 더불어 아름다운 회화성을 지니고 있다. 궁중이나 관아와 관련된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기록화에는 의궤도‚ 의궤도 형식의 기념화‚ 특정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 기로회(耆老會) 등 4가지 유형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궁궐과 사가에서 권계적인 내용의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주제로 한 역사고사화(歷史故事畵)를 많이 제작하였다. 특히 왕은 집무할 때 혹은 출입할 때 언제나 보고 관성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가까운 곳에 이러한 역사고사화를 그려 두었다고 한다. 또 왕세자가 거처하는 동궁(東宮)에도 이러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궁궐을 장식하였던 이러한 역사고사화의 양상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조선왕조실록(朝鮮?朝實錄)』을 보면 조선시대 왕들은 ‘옛날에 있었던 본받을 만한 일(前古可法之事)’을 궁전의 벽에 그리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한 사적(成敗之跡)’을 그린 책자를 만들었으며‚ 명현(名賢)의 사적(事跡)을 병풍에 그려 성중심이 되고 있고 그것을 봉안하는 건물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유교측의 대성전에도 유생들의 유식화병(儒式畵屛)이나 유성(儒聖)의 초상화가 남아 있고‚ 도교계의 삼국지도나 신상도(神像圖)에 주의할만한 대작들이 남아 있다. 민간에서도 초상화는 중요한 자료로 상당한 수량이 유전되어 있고‚ 계회도나 환혼도병(還婚圖屛)도 다소 남아 있다. 한 가문의 기록화로서 산도(山圖)가 족보에 끼어서 보존되었다. 그밖에 민간에서는 구운몽도‚ 효자도‚ 삼국지도‚ 호렵도(胡?圖)‚ 무이구곡도(武?九曲圖)‚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 등 전설이나 소설까지도 기록한 병풍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본 유물은 이순신장군(1545-1598)포진도로‚ 시기는 조선시대 19세기이다. 기록화의 일종으로 이러한 그림을 해진도‚ 수조도‚ 포진도라고도 하며‚ 진의 형태가 한자인 첨(尖)자오 같다고 하여 첨자도라고도 한다. 병풍형식으로 모두 10폭으로 구성되었으며‚ 삼도수군통제사가 예하 군선들을 통제영 앞바다에 집결시켜 훈련을 하는 모습이 그렸다. 이 작품은 어느 화공에 의해 그려졌는지 알 수 없으나‚ 거북선이 40여척 이상인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포진의 형태를 사실적이고 설명적으로 그렸다. 찰의 자료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또 명종은 침전에 효자도(孝子圖)‚ 경직도(耕織圖)‚ 계언병풍(戒言屛風)을 늘 펼쳐놓고 관성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런 내용들은 주로 중국의 사적이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 조선의 내용을 가진 역사고사화가 많이 그려졌다. 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국방에 대한 필요성이 급증하고 함경도에 출몰하던 오랑캐에 대한 방어의 필요성에 따라 전쟁도나 북관유적도도 그려졌다. 임진왜란과 관련한 그림으로는 <부산진순절도(釜山鎭殉節圖)> <동래부사순절도(東萊府使殉節圖)> <수군조련도(水軍調練圖)> <임란전승평양입성도(壬亂戰勝平壤入城圖)> 등이 있다. 사찰에서는 고승들의 초상화나 신상도가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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