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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외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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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일제강점기 해외여권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일제강점기는 1910년 8월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 1945년의 8.15광복에 이르기까지이다. 일제 36년은 한국 민족의 장구한 역사상 단 한번 있었던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의 단절의 시기였다는 점에서 치욕적이다.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중이던 1904년 2월 한국정부를 강압하여 한일의정서를 성립시켜 내정간섭의 발판을 만들었고‚ 같은 해 8월에는 제1차 한일협약인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식민지화 공작에 들어갔다.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인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1906년 2월 통감부를 설치하였으며‚ 이른바 보호정치를 펴 외교권을 대행하는등 실질적인지배에 들어갔다. 1910년 8월 22일 합병조약의 체결을 강행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식민화 침략은 완성되었다. 여기에는 한국위정자들의 무능함과 이완용을 필두로 한 친일 내각 이용구‚ 송병준등으로 대표되는 일진회등 매국노들의 반역행위도 큰 몫을 하였다. 미국‚ 영국 등 열강국들의 묵인도 일본에게 도움을 주었다. 일본은 한국병합을 달성한 뒤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보다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동년 10월 1일부터 구체적인 한반도의 경영에 들어갔다. 이 것은 1919년 일제강점기때 김백술(金伯述)이 사용한 여권으로서 한문‚ 영어‚ 일어로 작성된 해외여권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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