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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호 신순성 함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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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양무호 신순성 함장 사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신순성 함장(1878-1944)은 경남 거창후인(居昌後人)으로서 1878년 1월 27일에 출생했다. 한성일어학교(漢城日語學校)에서 일어를 배우고 1895년에 관비유학생(官費留學生)으로 도일(渡日)하여 일본 웅본현(熊本縣) 청정횡 중학(?正? 中學)에서 2년간 수학하였고‚ 1897년 9월에 동경상선학교(東京商船學校)에 입학하여 한국인 최초로 근대식 기선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901년 8월에 졸업하여 귀국했으나‚ 그 당시는 승선할 만한 기선(汽船)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구한국 정부가 해군창설을 목적으로 1902년에 일본으로부터 군함도입을 계획하였고‚ 1903년 4월 1일 고종황제가 양무함(揚武艦)이라 명명하였다. 신순성은 8월 19일에 양무호의 초대 함장으로 임명되어 인천에서 72명의 승무원을 선발하여 군함으로써 해군 창설에 참여했으나‚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이루어진 군함도입과 해군 창설은 조선정부의 무능과 무관심으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같은 시기에 조선정부는 광제호(光濟號)를 일본에서 도입하여 등대 순시 및 세관 감시용으로 운용했는데‚ 이 배의 유일한 조선인 항해사로 신순성이 승선하기도 했다. 그 후 신순성은 조선우선 소속의 회령환 선장을 역임하고‚ 1919년 인천에 조선총독부 체신국 해원 양성소가 설치되어 관선이 된 광제호가 그 실습선이 될 때 항해학 실습교관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해운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사진은 1907년 11월 16일에 촬영한 신순성 선장의 모습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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