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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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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성재간독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성재간독(誠齋簡牘)》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첩은 ‘성재(誠齋)’가 받은 서간들을 묶은 것이다. 성재의 이름은 모르겠으나‚ 그는 대방리(?方里)?대방(帶方)?방촌(舫村)?창평방촌(昌平舫村) 등으로 불리는 곳에 사는 송진사(宋進士)였음을 첩에 붙어 있는 봉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 첩 속에 들어있는 홍직필(?直弼)의 편지에 의하면‚ 이 집안에서 면앙정(?仰亭) 송순(宋純)의 문집 서문을 홍직필에게 부탁하여 받았다. 송순의《면앙집(?仰集)》은 1829년 담양(潭陽)의 기곡재실(錡谷齋室)에서 간행되었다. 여기에는 당대의 세도가문 풍양조씨의 조종영(趙鍾永)‚ 조인영(趙寅永) 그리고 종영의 아들 병헌(秉憲)의 편지가 들어 있다. 또한 아들의 편지를 보면 송진사는 조상의 시호(諡號)를 받기 위하여 집요하게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첩에는 담양현감을 비롯한 지방 수령들의 편지가 많다. □승운(□昇運)‚ 남준성(南駿聲)‚ □익필(□翼弼)‚ □화우(□和愚)‚ 이돈영(李敦榮)‚ 윤자순(尹字錞)‚ 김경찬(金敬粲) 등이 지방 수령들의 이름으로 보이는데‚ 송진사가 그들과 친목을 도모했음을 편지 내용으로 알 수 있다. 조상의 문집 간행‚ 시호 추진‚ 그리고 지방의 수령들과의 교류를 통해 송진사는 담양에 사는 신평 송씨 가문의 명예와 부‚ 그리고 세력을 추구했다. 19세기 지방 유력 가문의 전형적인 모습을 이 첩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첩 가운데 몇 개의 편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장유(張維‚ 1587-1638)‚ <계곡(溪谷)이 기암(畸庵)에게 보내는 서간>‚ 《성재간독》中 앞9면 간결한 문장으로 된 이 서간은 계곡(溪谷) 장유(張維)가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에게 보낸 것인데‚ 기암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아들로 담양 출신이다. 효종의 비 인선왕후(仁宣?后)의 아버지인 장유는 자가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이며‚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1605년 사마시를 거쳐 1609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 공주로 왕을 호종한 공으로 이듬해 신풍군(新豊君)에 수봉‚ 이조참판?부제학?대사헌 등을 지내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왕을 호종하였다. 그 뒤 대사헌?좌부빈객(左副賓客)?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천문?지리?의술?병서 등 각종 학문에 능통하였고‚ 서화와 문장에 특히 뛰어나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이식과 더불어 조선문학의 사대가(四?家)라는 칭호를 받았다. 많은 저서가 있었다고 하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계곡만필》‚《계곡집(谿谷集)》‚《음부경주應)?백림(伯臨)이고‚ 호는 매산(梅山)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7세 때 이미 한자로 문장을 지었으며‚ 17세에는 이학(理學)에 밝아 성리학자 박윤원(朴胤源)으로부터 오도유탁(吾道有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801년 부모의 권유로 사마시에 응시하여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회시에서 실패하고‚ 이때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그의 학문은 궁리(窮理)를 근본으로 하며‚ 육경(六經)은 물론 제자백가에 통달하였다. 저서로는《매산집(梅山集)》52권이 있다. ③작자미상‚ <서간>‚ 《성재간독》中 앞14면 이 첩의 서간 중에는 대나무에 관한 내용이 많다. 담양이 본래 대나무로 유명한데‚ 송진사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대밭 소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서간도 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부채 대나무 값은 얼마인지 모르지만‚ 공장(工匠)들이 한가하게 노는 것이 걱정입니다. 다음달 10일 안으로 값을 마련해서 보낼 것이니‚ 그 전에 미리 대나무를 내어 주시면 일에 낭패가 없을 것 같습니다.(扇竹價?赤知而 工匠閒遊 是所?然 來月初十日內 當備價以送 其前先爲出給則 事無?貝之瑞(□昇運). <기타참조>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참고문헌>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해(陰符經注解)》가 전한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었던 계곡은 문장으로 이름이 있었고‚ 기암은 스승의 학문을 이어 예학과 경학에 밝았다. 담양의 송씨 집안에 전해지다가 첩을 만들 때 포함되었는지도 모른다.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여러 날 만나지 못해 몹시 궁금합니다. 아침에 비국(備局:비변사)에 가느라 찬바람을 쐬어 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만나러 가지 못했습니다. 의논할 일이 많으니‚ 혹 틈이 있으면 들렀다 가기 바랍니다. 시고(詩稿)는 왜 바로 보내지 않습니까? 어제 달여서 보내주신 약은 고맙습니다.(阻?太日 ?戀?戀 朝往備局 昌寒己苦 未卽□太有講叩事 ?有暇 幸歷過 詩稿何不卽送昨送煎藥 太荷). ②홍직필(?直弼‚ 1776-1852)‚ <서간>‚ 《성재간독》中 뒤6면 조선후기 학자로 자는 백응(伯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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