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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운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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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농운유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농운(農雲)이 쓴 글씨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계부(季父)가 조카에게 쓴 간찰들이 수록되어 있다. 경진년 9월에 손자 병욱(丙旭)이 발문(跋文)을 썼다. 1) 시 : 별자리를 가지고 지은 七言 律詩이다. 별자리마다 나타나는 특징에 대하여 읊은 것으로 특정의 별자리가 나타나면 이에 따라 일어나는 자연 현상‚ 그리고 그에 따라 일어나는 인간사를 읊었다. 2) 간찰 : 객지에서 작성한 편지이다. 객지에서 자신이 겪는 고통과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걱정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자신은 설사와 복통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이는 더위를 먹은 것 때문인 것같다고 추측하고‚ 며느리가 25일에 딸을 낳은 소식 등을 전하고 있다. 3) 간찰 : 봄을 보내며 느낀 감회를 써서 보낸 글이다. 자신은 백발이 된 후 10여 년 동안 세속을 왕래하였는데 이제는 집 밖 풍진에 관여하지 않고 손님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겠노라고 하였다. 또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시 2수를 읊었다고 하였다. 4) 간찰 : 孫子가 학교에 입학한 뒤 단발을 하고 나타나자 이에 대한 감회를 적은 글이다. 그는 손자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기쁨과 단발을 까치 머리의 야만 습속이라고만 여겼던 생각 등을 말하고 있다. 5) 門楣文 : 자손이 비각을 세우고 난 뒤 문미에 붙인 글로 비각을 세우기까지의 저간의 사정을 기록한 글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曾?考 監察公에 대한 업적을 언급하고 있다. 증왕고는 중년에 기운이 쇠해지자 駒城으로 이사한 뒤 은거하며 의를 행하고 기틀을 다져 그 후 집안에서 벼슬에 나가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사람들은 이를 모두 감찰공의 積德에 대한 보답이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家君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가군은 특별한 은혜를 입어 蘇營에 부임한 뒤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여 營邑民들이 不忘碑를 閑睡?에 세웠다고 한다. 비각을 세운 자신은 1905년에 榮川에서 鰲川으로 관직을 옮겼는데‚ 오천은 전날 蘇營의 신설된 곳이었고‚ 한수동과 오천과의 거리는 불과 10여 리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은 읍민들이 세운 비에 비각을 세우고 존경하는 뜻을 보이는 것이 자손된 도리로 생각하여 직접 비가 있는 곳에 가서 형편을 살펴보고 工匠들을 부르고 丘木 등을 마련한 뒤 비각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6) 간찰 : 春川 南參?에게 보낸 편지이다. 참봉 형에 대한 그리움과 안부 등을 이야기한 뒤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하소연한 편지이다. 그가 병이 갈수록 심해져서 거의 죽을 지경이라는 사실과 집값에 대한 債帳이 회사로부터 와서 어쩔 수 없이 이를 다시 銀行으로 옮로 유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을 작성한 이는 먼저 삶과 늙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자연의 이치를 말한 뒤 효를 다하려다 자신의 몸을 손상시키는 것은 진정한 효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본인의 정신이 온전하고 건강할 때 몇 개 조항을 대략 기술하니 삼가 이를 지킬 것을 당부하였다. 10) 간찰 :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들의 안부 및 집안의 대소사에 관한 이야기 즉 집을 떠난 아들이 여러 날 피곤한 나머지 병을 얻지는 않았는지‚ 龍吉의 공부가 어떠한지‚ 參尉 댁 형편은 어떤지‚ 龍元 부자의 상황과 次?의 병환은 어떤지‚ 樹?이 이미 다른 곳에 혼처를 정하였다고 하는데 그 형편은 어떤지‚ 龍石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데 별탈은 없는지 등을 묻고 이야기하였다. 또 그는 金弁이 발가락에 상처가 나서 언제 상경할지 모르니 그를 기다리지 말라는 것과 어느 날에나 돌아올 생각인지 등을 묻고 있다. 11) 음력 2월에 아버지가 注濟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간의 소식을 묻고 집안의 대소사와 그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였다. 즉 參尉 집은 별탈 없는지를 걱정하고 宣傳官이 목구멍이 아프고 부어 수척해지고 끓는 물만 먹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한 뒤 물가가 뛰었으니 일찍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는 것 등을 이야기하였다. 12) 새해 아침에 우연히 읊은 글 : 새해 아침에 느낀 감회를 읊은 글이다. 예전 새해에는 양친을 모시고 옛 일을 돌아보곤 하였던 것과 백발이 된 감상을 이야기하고 세속이 변한 점과 현실의 어려움 등을 토로하였다. <기타참조>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참고문헌>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겨 여러 곳에 빚을 지고 있는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형이 서울에 있었으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7) 간찰 : 제자가 선생에게 보낸 편지이다. 선생의 제자가 된 것에 대해 다행으로 여기면서 말세에 異端邪說이 홍수처럼 범람하여도 자신들의 학문을 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스승이 후학을 開道하고 양성해서 문하에서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음을 祝賀하고 있다. 8) 간찰 : 巨濟에 있는 兄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이야기 즉 參尉 형제 등의 안부‚ 安龍昌이 어제 돌아온 것‚ 龍元의 일‚ 두 사람이 내일 鰲山을 출발할 예정이라는 점등을 말한 뒤 머뭇거리지 말고 일찍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하였다. 9) 유서 서문 : 자식에게 쓴 유서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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