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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영필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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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조기영필 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개설> 서간은 일반 글과는 달리 말 대신 쓰는 글로 수신인이 있고 수신인과의 관계에 따라 적절한 예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서간문이라는 형식이 생겨났다. 발신인(發信人)‚ 수신인(受信人)‚ 용건(用件)의 구성요소를 가지며‚ 이두로는 고목(告目)‚ 기별이라고 하고‚ 조선시대 이전부터는 우무‚ 유무‚ 글월이라 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와서 편지라는 말이 쓰였다. 순한문이나 이두문을 섞어 쓰는 한문서간과 순한글이나 한자를 섞어서 쓰는 언간(諺簡)이 있으며‚ 한글편지는 내간(內簡)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한문서간에는 수필과 평론의 구실을 하는 문학작품인 것도 있어 한묵(翰墨)이라는 명칭도 생겼다. 내용에 따라 문안(問安)‚ 평신(平信)‚ 하장(賀狀)‚ 위장(慰狀) 등으로‚ 용도에 따라 실용서간과 문예서간으로 나뉜다. 현대의 편지글에는 한문서간과 일본서간이 스며 있다. <작가> 조기영(趙冀永 1781~?)의 자는 수경(壽卿)‚ 본관은 풍양(?壤)이다. 1814(순조14)년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837년 이조참판을 거쳐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지방행정의 모순을 시정하고 도민들의 복지향상을 도모하는 일에 힘썼다. 1840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49년 한성부판윤을 지내고 이 해 철종이 즉위하자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1852년 원접사(遠接使)로 청나라의 사신을 맞았으며‚ 상호군?형조판서를 지내고 지중추부사로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조기영이 이석사에게 보낸 답장서신이다. 지난번 일을 고맙게 여기던 차에 보내준 편지를 받았으며‚ 봄처럼 따뜻한 겨울날 몸은 건강하신지 안부를 물었다. 이어 자신은 관아의 일들이 어긋나 매우 당황하고 있으며‚ 보내준 백오계는 서울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고마워하고 있다. 向顧?用感荷 卽承?書 備審冬暖?春 侍候衛重 慰仰慰仰 冀永 近以?啣日事違召 甚?隘而已 百烏鷄 荷此勤念 尤切仰謝 而京裏難得之物也 只自僕僕無伴表 故只新曆二件 忘略仰呈 幸望笑領?何 戾?之計何當耶 預企預企 餘擾甚不備 謝禮 乙酉陽月卄二日 趙冀永 拜 <기타참조>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참고문헌>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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