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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필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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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박세당필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조선시대 실학자인 박세당의 자는 계궁(季肯)‚ 호는 서계(西溪)‚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1660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 1664년 부수찬(副修撰)으로서 황해도 암행어사로 나갔다. 1667년 수찬(修撰)을 거쳐 이듬해 동지사 서장관(冬至使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예조?형조의 참의(參議)를 지낸 후‚ 1694년 갑술옥사(甲戌?事)에 소론(小論)이 중용(重用)되자 공조?이조?형조의 판서를 역임했다. 실학파 학자로서 농촌생활에 토대를 둔 박물학(博物學)의 학풍을 이룩했고 글씨를 잘 썼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서간은 이틀 후면 먼 길을 떠난다는 친구의 편지를 받고 몸소 가서 송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담겨있다. 박세당은 자신의 개혁사상을 실행할 수 없는 붕당정치에 환멸을 느껴 관직을 버리고 양주 석천동에서 학문에 전념했는데‚ 이 글도 석천동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知兄將不得免此一行 而入城時?遑無隙 又因病身?歸 難辦餘事 竟?就別 ?令?? 料??承?翰 復審信宿辭朝 衰病人事 ?不復再接?? 而遂有朝露之? ??又可憐耶 救窮之意 良荷不遺 但此是中貧者所能 ?望其終不負盛?也 千萬只祈自愛 神昏不宣 伏?兄下照 謹謝狀上 卽? 服弟 世堂 頓 <기타참조>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참고문헌>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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