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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에게 보내는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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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황원에게 보내는 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양명학자이자 시조시인이며‚ 언론인이자 사학자로서 독립운동가 · 교육자 등 폭넓은 족적을 남긴 민족지성이라 할 수 있다. 초명은 경시(景施)‚ 자는 경업(經業)‚ 호는 담원(?園) · 미소산인(薇蘇山人)‚ 아호는 위당(爲堂)‚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서울에서 출생했으나 가세가 기울어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생활하다가 18세의 나이에 강화학파의 대표적 학자 이건방(李建芳)의 제자가 되었다. 경술국치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1913년에는 신규식(申圭植)‚ 신채호(申采?)‚ 박은식(朴殷植) 등과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그 후 부인 성씨(成氏)의 부음을 듣고서 귀국하여 1923년부터 연희전문(延禧專門) · 불교중앙학림 · 협성학교 등에서 한문과 역사 등을 가르쳤다. 1935년에 <5천년간 조선의 얼>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후로 국학 분야‚ 특히 실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해방후에는 국학대학 학장‚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감찰위원장 등을 지냈으나 6 · 25전쟁 중 납북되었다. 그의 저술은 훗날《담원정인보전집(?園鄭寅普全集)》(전6책)으로 간행된 바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1941년 음 7월에 작성된 편지로서 황원(黃瑗)의 안부와 자신의 근황을 소개한 내용이다. 자신은 저술활동 과정에서 병을 얻어 고생한다는 점‚ 스승인 난곡(蘭谷) 이건방의 집안 형편 등에 대한 자신의 심정의 일단을 비교적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일제 군국주의의 감시의 칼날이 강력히 옥죄는 상황의 사회상과 지식인의 처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기타참조>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참고문헌>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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