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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문필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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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근문필 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이근문(李根汶)의 호는 백파(白坡)‚ 본관은 신평(新平)으로 전북 김제(金堤) 출신이다. 왕사찬(?師瓚)‚ 유제양(柳濟陽)과 동갑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서간은 이근문이 왕사찬에게 보낸 것이다. 후회스럽구나‚ 젊었을 적에 마음이 가라앉지 못함이 벗의 편지 끊기고 세상은 어려우니 메마른 구레나룻 시(詩) 속에 늙었고 또렷한 모습은 꿈속에 보일 뿐 내 나라 산천은 모두가 피폐해 한겨울 눈보라에 한 몸이 떨고 있네. 창강(滄江) 소식 거울같이 밝은데 한스럽다‚ 외로운 새 흘간산(紇干山)에 부쳤으니. 세상이 변하고 사람마저 달라지니 마음은 찬 재(冷灰)와 같고 물도 멀고 산도 멀어 눈은 끝없이 푸른 하늘을 바라봅니다. 20년간의 일을 생각하니‚ 아득히 상전벽해(桑田碧涇)된 것이 호겁(?劫)이 마치 일순간에 변한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헌종 12년 병오(丙午)의 태평 시대에 태어나서 문자를 배워 검은 건(巾)‚ 푸른 옷으로 과거장(科擧場)에 출입하면서 글재주를 시험보고 구경도 하였으니‚ 족히 좋은 풍채와 정신이 성한 사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늘그막에 빨리 썩은 나무와 썩은 흙같은 물건이 될 줄 알았으리오. 대개 혼돈이 열린 후에 어둠과 밝음이 다시 나뉘어짐은 자연의 이치이며 인력에 의하여 억지로 할 바가 아닙니다. 옛날의 성인이 항상 뉘우치고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양(陽) 중에 음(陰)이 움직이는 이치를 추구하고 평화의 뒤에 난리가 생기는 기틀을 조심했던 것이니‚ 천고(千古)에 밝은 거울이 이와 같을 뿐입니다. 우리 나라가 비록 바다 한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나‚ 역대 임금 이래로 백성을 교육하되 삼강오륜으로 큰 길 큰 법을 삼아서 돌아가며 시행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어찌 조선조 5백 년을 살아온 백성이 공중에 떠 있게 될 줄 알았으리오. 백번이나 생각해 보아도 온몸에 연무(烟霧)가 가득하며‚ 북쪽을 바라보고 통곡하여도 하늘에 해는 빛이 없고‚ 서쪽을 향해 길게 탄식하여도 바다의 조수(潮水)가 삼절(三節)입니다. 예로부터 망국의 세상에는 뛰어난 남자와 열사가 많이 나온다고 역사에 일컬었는데‚ 이제 보건대 최면암(崔勉庵) 선생이 대마도에서 갇혀 죽은 것은 송(宋) 나라 문산(文山)이 연옥(燕?)에서 죽은 것에 못지않고‚ 안중근 의사가 만주 할빈에서 이등(伊藤)을 사살한 것은 장자방(張子房)이 박랑사(博?沙)에서 쇠몽둥이로 진시황을 친것보다 낫습니다. 그 나머지 몇 사람은 절개를 지켜 죽고‚ 몇 사람은 의병을 일으켰으니‚ 망국(亡國)의 운(運)에는 크게 보탬이 없으나 후세에 기풍데 이르고 지극한 근본의 공부가 있었는데 이어 죽었으니 길이 탄식을 그치지 못하겠습니다. 형계서는 요사이 어떻게 지내시며 무엇을 업으로 하고 계십니까. 아마 흐트러진 머리에 파리한 몸으로 서상(書床)에 비스듬히 누워 여러 제자를 가르치는 것으로 소일하는 법을 삼겠지요. 이것 또한 스스로 절개를 지키는 일이니‚ 다시 흐린 이 세상에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댁내에 자손은 몇이나 두셨습니까. 백씨(伯氏) 소금(素琴) 어른은 복(福) 누리고 안녕하시며 유이산(柳二山)의 가세는 옛과 같이 편안하십니까. 생각해 보건대‚ 계사년(癸巳年) 겨울에 형과 내가 유이산 집에 같이 가 세 동갑의 모임을 짓고 얼큰히 취하여 헤어?으니 지난날의 풍류가 또한 희미한 꿈속의 일입니다. 내가 옛나라에 봉성(鳳城)에서 머물은 것은 실로 천한 장부의 모리(謀利) 행위가 아니고 송눌인(宋訥人) 댁의 두터운 정의(?誼)를 거절하기 어려워 몇 년을 머물렀는데‚ 얻은 것은 산천의 맑은 기운이 가슴에 젖고 사림(士林)의 문장과 아취(雅趣)가 눈앞에 익어 마음에 심히 부러워하여 이를 잊지 못한 것입니다. 병신년(丙申年) 이후로는 글 가르치기에 골몰하여 옳다옳다함이 입에서 잠시도 그치지 않기를 10년을 했으니‚ 이놈의 모양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것입니다. 병오(丙午) 회갑(回甲) 이래로 정신을 가다듬고 깊이 생각하니‚ 60년의 행한 일이 바다 위의 끝없는 조각배와 같습니다. 무신년(戊申年) 봄부터 전에 보던 책을 가지고 옛 살던 곳으로 돌아가매‚ 그곳은 나의 5대조 시독공(侍讀公)의 제실(祭室)이요‚ 집을 중수(重修)하여 비바람을 피할 수 있기에 내 자식과 손자 그리고 종손(從孫)과 종질(從侄) 등 십여 어린애를 데리고 어린놈은 역대의 사기(史記)를 가르치고‚ 큰놈들은 소학(小學)과 논어 ? 맹자 등 편(編)을 가르치니‚ 날로 젖어들고 달로 연마되어 세월이 흘러감을 알지 못합니다. 입에 풀칠하는 방법은 4년이나 농사를 안했으되 솥에 거미줄침이 없으니‚ 이것도 우습습니다. 만 가닥 회포를 한 자루 붓으로 다 기록하기 어려우니 천만(千萬) 양찰(諒察)하십시오. 황매천 만장(輓章)은 매천 절명시를 차운(次韻)하여 그의 영전(靈前)에 바치오니‚ 형이 살펴보시고 고치기를 아끼지 마십시오. 신해년(1911) 11월 16일 석제촌에 사는 손제 이근문 백파 배상 <기타참조> "국역 황매천 및 관련인사 문묵췌편" 상‚ 미래문화사‚ 1985. <참고문헌> "국역 황매천 및 관련인사 문묵췌편" 상‚ 미래문화사‚ 198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전싱문화연구원‚ 1992. (氣風)을 깨우침이 많을 것입니다. 하물며 호남의 명사가 나뭇잎 떨어지듯 없어지고 쇠진하니‚ 이는 하늘이 반드시 문운(文運)을 망치려고 하는 소치입니다. 나의 친구로 말한다면 이해학(李涇鶴)이 서울 집에서 세상을 버리니 슬프기는 슬프지만 해놓은 사업이 해상의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황매천이 죽어 어진 길을 구한 것은 먼저 통곡하고 후에 칭하(稱賀)할 만하니‚ 이는 글 읽고 의(義)를 지킨 선비라 할 것이요‚ 이석정(李石亭)은 다만 나의 종중(宗中)의 영재(英才)일 뿐 아니라‚ 한 고장에 살아서 열흘과 달로 상대하여 깊이 그 실적을 압니다. 그 문장과 재주가 일세에 뛰어나 후학들이 머리를 들고 쫓으며 태산과 북두성처럼 우러르니‚ 한갓 풍조를 다라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깊은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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