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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병필5언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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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의병필5언절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이의병(李義秉)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재심(在心)?사형(士衡)‚ 호는 주암(疇巖)‚ 초명은 상준(商濬)‚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효자로 이름이 알려졌다. 1773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1782년 아버지가 역모에 무고되어 전라도 추자도로 극배되자 천복으로 수행하기도 하였다. 그뒤 1796년 아버지의 억울함이 신원(伸寃)되고‚ 1801년 복관되었다. 그뒤 두 번이나 관직의 부름을 받고도 나가지 않고 향리에서 은둔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액자는 본래 8폭 병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풍경을 읊은 오언절구 여덟 수를 각 각 한폭씩 쓰고‚ ‘오봉한설’(五峯寒雪)‚ ‘송각청뢰’(松閣??)등으로 각각 제목을 붙였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아류인 셈이다. 그런데 그것을 종횡으로 오려서 여백을 없애고 하나의 액자로 만들어 버렸다. 무슨 연유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글씨로서의 가치는 없다. 글씨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것을 전하지만‚ 동시에 글씨에는 조형미가 있어서 감상의 대상이 된다. 훌륭한 글씨는 그림에 못지 않게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동양화에서 여백이 중요하듯이‚ 글씨의 여백도 함부로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기타참조>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참고문헌>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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