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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필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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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오세창필전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오세창(吳世昌)은 근대의 언론인?명서가?전각가?서화연구가로 자는 중명(仲銘)‚ 호는 위창(葦滄)‚ 본관은 해주(涇州)이다. 역관 오경석(吳慶錫‚ 1831-79)의 아들로 1886년 박문국 주사(博文局 主事)로 한성주보(漢城週報) 기자를 겸했고‚ 1894년 군국기무처 낭청총재(郎廳總裁) 비서관이 되었다가 농상공부 참의?우정국 통신국장을 지냈다. 1896년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외국어학교 조선어 교사로 초빙되어 일년간 교편을 잡았다. 1902년 개화당 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했다가 돌아와 만세보(萬歲報)?대한민보사(?韓民報社) 사장‚ 대한협회(?韓協會) 부회장을 지냈다. 삼일운동 때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여 3년간 투옥되었다. 해방 후 매일신보(每日新報)?서울신문 명예회장‚ 민주의원(民主議院) 의원‚ 대한독립촉성국민회(?韓獸立促成國民會) 회장‚ 전국 애국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지냈다. 전각과 서예에 두루 능했는데 특히 전서(篆書)에 심취했다. 오대징(吳??)등 청대(?代) 명서가를 배워 다양한 서풍을 구사했는데‚ 특히 고대 종정문(古代 鐘鼎文)을 가미한 古篆(고전)이 높이 평가된다. 부친이 수집해 놓은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서화사에 관련된 문헌을 뽑아《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편찬하고‚ 우리나라 역대의 서화(書畵)와 인장(印章) 자료를 모아《근묵(槿墨)》‚《근역서휘(槿域書彙)》‚《근역화휘(槿域畵彙)》‚《근역인수(槿域印藪)》등을 편집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특가인‚ 시□□지‚ 색신□경‚ 시즉풍리(豈特可人‚ 詩□□知‚ 色身□景‚ 是卽風裏)이라 전서로 쓰여있다. 미지막에 경진(庚辰‚1940년) 新春‚ 위창(葦滄)이라 쓰고 낙관을 찍었다. <기타참조> "강운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참고문헌> "강운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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