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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10폭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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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화훼10폭병풍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허백련(許百鍊‚ 1891-1977)은 진도 태생으로 평생 의재(毅齋)‚ 의재일인(毅齋逸人)‚ 의재산인(毅齋散人)‚ 반아자(半啞者)‚ 의재현인(毅齋鉉人)‚ 가낙고민(駕?古民)‚ 무등산인(無等山人)‚ 적취각주인(積翠閣主人)‚ 수류화개관주인(水?花開館主人)‚ 근인당주인(近仁堂主人)‚ 의도인(毅道人)‚ 일봉거사(一蓬居士)‚ 의옹(毅翁) 등의 호를 사용하였다. 허백련은 스승인 김정희로부터 “조선을 통해 가장 문기 넘치는 화가”라는 격찬을 받았던 소치 허련의 방계손(傍系孫)이다. 피마준과 흡사한 건필을 구사하였고‚ 붓끝이 갈라진 듯한 독필(禿筆)과 설익은 듯한 담청?담홍색의 효과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나 독특한 화격을 풍긴다. 허련의 이러한 설익은 듯한 화풍은 후대 남도화단의 풍토적인 특징을 규정짓게 하는 근간이 되었다. 허련의 화풍은 진도의 운림산방에서 가전(家傳)되어 아들인 미산 허형(米山 許瑩‚ 1850-1931)과 손자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7-1987)‚ 그리고 의재 허백련에게 계승되어 현대 남도화단에 전통회화의 맥을 잇게 하였다. 1938년 광주(光州)에 정착하여 광주 일원의 전통서화 진작과 후진 양성을 목표로 ‘연진회(鍊進會)’를 발족시켰다. 이는 광주화단을 융성하게 하고 그의 개성이 지역화풍의 성격을 형성하게 하는 발단이 되었다. 의재는 평생동안 많은 산수화를 남겼다. 그의 산수화는 철저히 소치 허련의 필치와 색감‚ 그리고 화보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화풍을 그려낸 관념적 표현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남도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산수표현이나 경물의 현장감은 그의 사생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치의 화풍을 나름대로 소화한 갈필과 진한 먹의 무디고 대담한 구사나 선명한 색감‚ 진지한 화면 처리에도 그의 개성적인 화격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가 시기마다 사용한 아호의 변화와 그의 산수화의 시기별 특징은 거의 맞물려 변화하는데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1930년대 중반 이전에는 의재 시기로 전통화풍의 답습이나 일본화풍의 영향으로 다양한 화풍을 시도하면서 관념적 전통산수를 자신의 회화세계로 정착하였다. 이 시기는 미점산수‚ 갈필을 가미한 사의적 경향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1930년대에서 1950년에 이르는 의재산인 시기는 의재 회화의 개성미가 엿보이는 자기양식의 정착기이다. 이 시기는 광주에 정착하여 향토적인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이 주를 이루며 황공망식의 중국화적 소재의 영향이 보인다. 밋밋한 산등성이와 토파에서 짙은 향토성이 간취되며‚ 담담한 운필과 담묵‚ 갈필의 적절한 사용으로 눈에 익은 산천들이 전개되다가도 가옥 산수화를 통해 구현했다면‚ 화훼와 화조화는 자신의 심경과 신조를 직접 투사하는 대상이 되었던 듯 하다. 이 화훼10폭 병풍 역시 1950년대 이후 의도인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10폭 각각의 화풍와 의취를 들여다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만년 작가의 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의재 화훼도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 하다. 병풍 구성의 순서에 따르면‚ 제1폭은 소나무‚ 제2폭은 매화‚ 제3폭은 목련‚ 제4폭은 석란‚ 제5폭은 모란‚ 제6폭은 파초‚ 제7폭은 포도‚ 제8폭은 수련‚ 제9폭은 국화‚ 제10폭은 석죽을 각각 묘사하였다. 그림은 대개 춘하추동의 계절적인 특징에 맞는 화재로 차례로 배열되었다. 원래 절지 또는 화훼화의 주제로서 자주 등장하는 사군자 이외에도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 선비들이 서재 앞에 심어 두고 비 듣는 소리를 완상했다는 파초‚ 진흙 속에서도 맑게 피어나 순결함을 상징하는 연꽃을 비롯해 민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부귀와 다산의 상징인 모란과 포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묵의 농담을 능숙하게 조절하여 화면에서 기운생동하는 운필의 멋을 잘 살려내어 볼수록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김정희의 수제자였던 허련의 화풍을 익혀 시서화 삼절로도 두각을 나타냈던 허백련은 각 폭의 소재에 맞는 화제시를 적어 그림의 운치를 한층 더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한국회화사"‚ 안휘준‚ 일지사‚ 1980. "한국회화의전통"‚ 안휘준‚ 문예출판사‚ 1988. 이나 인물은 여전히 화보풍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1950년대 이후인 의도인 시기는 간일한 구성으로 여백이 차지하는 면이 넓어지고 끊어진 듯한 갈필의 미묘한 효과가 두드러진다. 특히 원숙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담청과 담홍을 사용하면서도 문기 있는 그만의 독특한 남종화풍을 완성한 시기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허백련의 평생에 걸쳐 제작된 작품은 대부분이 산수화이다. 그러나 1950년 전쟁의 폐허 위에서 모든 사람들이 좌절과 허탈감에 빠져있을 때‚ 의재는 무등산 자락의 춘설헌에 묻혀 심란한 마음을 거두려는 듯 화조와 화훼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실의를 딛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화업에 정진하게 된 계기를 화조화에서 찾은 것이다. 자신이 평생 그리던 이상향을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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