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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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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국화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김용진은 본관은 안동이며‚ 서울태생이다. 자는 성구(聖九)이며‚ 호는 영운(穎雲)‚ 향석(香石)‚ 운정(芸庭)‚ 과정(果庭)‚ 중서(中栖)‚ 여금(侶琴)‚ 한인(?人)‚ 회오(?吾)‚ 일소(一笑)‚ 구룡산인(九龍山人)이다. 그리고 호당(堂號)는 미산석장(嵋山石莊)‚ 석고연재(石鼓硏齋)‚ 천수매관(千樹梅館)이다. 당시의 세력층인 안동김씨 문중을 배경으로 자라난 그는 한말에 세마(?馬)?수원군수 및 내부(內部)의 지방국장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43세(1905년)에 관직을 떠난 뒤에는 서화에만 전념하였다. 그런 이유로 현재 남아 있는 작품들은 대개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던 1920년대부터 그의 만년인 1960년대까지 걸쳐 있으나‚ 주로 1940년 이후의 것이 대부분이다. 1949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國展) 서예부 심사위원과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의 명예회장과 한국서예가협회의 고문을 역임하였다. 글씨는 안진경체(顔眞卿體)의 해서와 한예(漢隷)에 바탕을 둔 예서 및 고격한 행서를 주로 썼고‚ 그림은 사군자와 수선화?모란?등꽃?연꽃?장미 등의 문인화(文人畵)를 즐겨 그렸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1942년 봄 국화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횡축의 형식만 제외하고 같은 해에 외손자 조용익(趙容益)이 결혼할 때 그려준 12첩 병풍 마지막 폭과 매우 유사한 필채로 그려졌다. 주요 소재인 국화의 주변 배경은 생략되었고‚ 백국과 황국이 대나무로 엮은 지지대를 사이에 두고 피어 있는 구도도 일치한다. 국화는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정보(李鼎輔‚ 1692-1766)의 시조에서 나오는 것처럼 서리 내리는 찬 날씨에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습성 때문에 ‘오상고절(傲霜孤節)’로 비유되어 왔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국화는 김용진이 가장 즐겨 그렸던 화재로서 간략한 필선으로 꽃을 그렸지만‚ 그 방향과 위치에 따라 꽃의 모양은 분명하고 높은 품격을 지닌다. 그림은 봄에 그려졌지만‚ 화제시는 “가을 숲 붉은 잎은 서리에 취해 있고‚ 묵은 밭에 찬 꽃은 늦은 계절 향기를 내뿜네. 이를 대하고 어찌 그냥 지나칠 것인가. 앞마을서 술 사오소. 이 9월을 보내세.”라는 깊은 가을의 운치를 담은 내용이다. 국화는 김용진이 평소 즐겨 그리던 화재였던 만큼 실제 사생을 바탕으로 하였다기보다 마음 속 일기(逸氣)를 펼쳐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용진은 기교에 치우치지 않고 색채를 사용하면서도 담백하고 품격 있는 화풍을 유지하였는다. 따라서 김용진의 작품은 한국화단에서 오창석과 제백석 등 중국의 신문인화를 자신의 화풍에 받아들여 자신의 필법으로 승화시켜 수묵채색화의 새로운 일면을 정립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한국회화사"‚ 안휘준‚ 일지사‚ 2000. "한국회화의전통"‚ 안휘준‚ 문예출판사‚ 1997.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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