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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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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암키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흙으로 만든 지붕을 이는 것으로 오목한 곡면으로 된 바닥기와. <발달과정 및 역사> 기와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반도에 기와가 들어온 시기는 한나라의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한 서기전 2‚ 1세기 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기와는 지붕에 씌워 눈과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고 이를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된다. 암키와는 기왓골을 형성하는 바닥기와로 장방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작은 원통형의 목제 모골의 바깥쪽에 포목을 감고 점토판(粘土板)을 씌워 방망이같은 고판(叩板)으로 두들겨서 건조시킨후 와도(瓦刀)로 2-4분하여 제작한다. 대부분 표면에 선(線)‚ 승석(繩蓆)‚ 격자(格子)‚ 화엽(花葉)등의 고판(叩板)무늬가 나타난다. 간혹 절이름‚ 제작기호‚ 제작연대‚ 사용처 등이 새겨져 있기도 한다. 이 암키와는 일부가 결실되었다. 등면에는 방형안에 `馬老官`이라는 명문이 쓰여져 있다. 광양지역은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 중반기까지 마로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명문화가 다량 출토되어 마로산성이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면은 사도흔과 포흔이 확인된다. 협단면은 약 2cm정도 자른 후 부러뜨렸다. <참고문헌> 김성구‚ 1984‚ ‘통일신라시대의 와전연구’‚ “고고미술”제 162.163‚ 한국미술사학회. 김성구‚ 1992‚ “옛기와”‚ 대원사. 시공테크.코리아비주얼스‚ 2002‚ “그림과 명칭으로 보는 한국의 문화유산 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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