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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읍 관음리(석불상 주변) 가마터 13 도자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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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문경읍 관음리(석불상 주변) 가마터 13 도자기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문경시 관음리 가마터에서 발견된 도자기편. <위치와 유적입지> 문경읍에서 관음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관음리의 첫 관문인 황정머리가 나온다. 똑바로 올라가면 하늘재 방향이며 우측으로 가면 꼭두바위 방향이다. 우측으로는 작은 개울물이 흐르고 있으며 약 200m 정도 오르면 꼭두바위 쪽과 또 길이 갈라진다. 가마터는 꼭두바위 반대쪽으로 가야 한다. 그 길을 따라 올라오면 주위는 모두 사과밭으로 되어 있으며 사과밭을 지나면 작은 평지가 나온다. 평지 중앙에는 묘가 있으며 그 묘를 기준으로 좌측으로 내려오면 천평정도 되는 콩밭이 있다. 가마터는 콩밭 구석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굴뚝 부분의 형체가 조금 보이며 전형적인 망뎅이 가마다. 굴뚝으로부터 20-30m 내에는 도편과 가마의 흔적이 많이 있다. 출토되는 유물로 주로 사발‚ 대접 파편이며‚ 철화백자 파편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연대는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며 몇 개의 가마가 더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① 백자 대접 온도가 좀 낮은 결과로 유약이 덜 녹았다. 내부에는 굵은 모래가 있는데 이는 그릇 속에 다른 기물(器物)이 놓여져 소성(燒成) 되었기 때문이다. 지질박을 이용하여 기물을 성형하였으며‚ 기물 중앙부에 지질박 또는 나무칼을 이용하여 약간 들어간 둥근 선이 그어져 있다. 그릇의 구연부가 파손되었지만‚ 파손부위의 두께를 보면 구연부 두께가 어느 정도 두꺼웠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릇의 두께와 굽의 모양을 볼 때 고려시대에서 조선초기의 굽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상당히 얇으며 굽부분으로 내려오면서 점점 두꺼워 진다. 굽부분은 속굽으로 되어 있으며 지름은 4.8㎝이며 물레성형에 있어 아주 능숙한 도공의 솜씨라 생각된다. 뒷부분에 물레성형하면서 생긴 손자국을 볼 때 굽부분만 살짝 깎은 것으로 보인다. 굽부분 역시 굵은 모래가 붙어 있으며 아주 깨끗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② 백자 대접 유약색은 회백색이고 중앙이 약간 들어가 있으며 성형은 지질박을 사용하였다. 바닥에 굵은 모래가 붙어 있는데 이는 그릇의 내부에 다른 그릇이 놓여서 소성(燒成)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연부 전체가 파손되었으며 소성은 산화염과 중성염으로 소성 되었으며 굽부분 역시 굵은 모래가 상당히 많이 붙어 있다. 굽의 형태는 오목굽을 하고 있으며 굽은 턱을 주지 않고 둥근 칼로 자연스럽게 깎아 내린 듯 하다. 굽바닥의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다 ③ 철화문 대접 그릇의 형체는 전혀 없으며 작은 도편 하나 남아 있다. 철화 백자로 추측되며 지질박을 사용하였다. 철화로써 어떤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고 붓의 터치를 주면서 세 군데의 점을 찍은 것 같다. 도편 상으로 볼 때 연대는 상당히 오래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④ 철화문 대접 위의 도편의 경우 그릇의 내부에 철화가 그려져 있으며 이는 시각적으로 볼 때 옆면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속에다 그림을 그렸으며‚ 본 도편은 그릇의 외부에 그려져 있다. 이는 내부의 면적보다 육안으로 보이는 부분에 있어서 외부가 더 많이 보이기 때문에 외부에 그려진 것 같다. 붓의 터치로 보아 전문화공은 아니지만 붓을 잘 다루는 사람의 흔적으로 보인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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