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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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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술병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술을 담아 보관하는 목이 좁은 그릇. <개설> 소주를 담아 보관하던 항아리로 방언으로 도가지라고도 한다. 흙으로 빚어 불에 구워서 만든 용기이다. <역사> 인류의 발달사의 측면에서 보면‚ 수렵시대에는 과실주가 만들어졌는데 술의 기원과 그것을 보관하는 술병의 기원은 함께 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과실은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과즙이 스며 나오고 과실 껍질에 붙어 있는 천연효모 쉽게 번식하여 술이 되는데 이것으로 보아 원시시대에 술이 발생하였음을 짐작 할 수 있다. 벌꿀을 물에 풀어 놓아 두어도 천연효모 때문에 술이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우연히 발견되어 벌꿀술도 등장하였을 것이다. 농경문화의 발달에 따라 곡물 생산량이 늘어나자 곡물로 술을 빚는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세조 때에 우리 나라에 온 유구의 사신 보수고(普須古)는 이 술을 `일일주(一日酒)?라 하였고 <지봉유설>에서 미인이 씹어 빚는다는 뜻에서` 미인주(美人酒)?라 하였다. 오늘날 이 미인주는 주로 열대지방에서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문화적 의의〉 과실이나 곡물을 원료로 하여 술을 빚은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이것을 다시 증류하여 만든 소주는 한 참 후에 만들어 진 것이다. 소주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 몽고군에 의해서 도입되었다. 특히 몽고군의 주둔지였던 안동과 개성‚ 제주도는 제조법이 발달하였으며‚ 최근까지도 그 전통이 유지되어 유명하였다. <유사 관련 용어> 일일주‚ 미인주‚ 벌꿀주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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