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놋대접

추천0 조회수 33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놋대접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놋쇠로 만든 대접. <개설> 놋쇠로 만든 수저를 놋대접이라고 하는데‚ 주로 국그릇 혹은 숭늉그릇 등으로 사용되었다. <역사>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금‚ 은‚ 동‚ 철 등의 세공술이 발달하여 일본에 전해 주기도 하였고‚ 신라 경덕왕 때에는 철유전(鐵鍮典)이라는 기구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놋쇠는 구리에 주석이나 아연?니켈 등이 혼합되어 이루어진 합금으로 옛날에는 유석(鍮石)‚ 유철(鍮鐵)‚ 진유(眞鍮)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놋쇠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진한에서는 철을 생산하여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하였다. 이는 8세기 이후에 제작된 많은 동종(銅鐘)들이 현재도 남아 있어 그 당시의 놋쇠 다루는 기술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때에는 원나라에서 유석을 요구했으나 압록강 이내에서는 유석이 나지 않고 신라 때 한토(漢土:중국 땅)에서 사다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건국 초기부터 유기 생산을 장려하여 세종 때에는 황해도 봉산군과 장연현에서 노감석(爐甘石)을 채굴했고‚ 숙종 때에는 경상도 양산에서 유랍(鍮?)을 생산하였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짜놋쇠는 유철‚ 청철‚ 주철을 이르는 말로‚ 주로 두들겨서 만든 대야‚ 양푼‚ 수저‚ 젓가락‚ 놋상‚ 놋보시기‚ 놋동이‚ 징‚ 꽹과리 등인데‚ 방짜놋쇠로 만든 그릇은 소리가 매우 아름답다. 국이나 숭늉을 담는 데 쓰이는 식기. 밥그릇과 한벌이 되는 것으로 모양이나 크기가 일정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입지름이 넓고 바닥은 지름보다 좁으며 그 사이가 곱게 곡선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용량은 대‚ 중‚ 소의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작은 것이 첫돌을 맞이하는 어린이용으로‚ 80~100cc정도의 용량이다. 중간크기는 150~180cc정도‚ 큰 것은 200~240cc정도로 연령에 따른 1인분의 국의 분량을 기준으로 삼는다. 대접모양의 그릇은 빗살무늬토기시대의 발형토기(鉢型土器)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제 완(椀)은 지금의 대접과 그 형태가 같다. 이 형태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청자?백자 제품에 이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오늘날 사기제품?놋쇠제품?알루미늄제품?스테인레스제품?합성수지제품 등 다양하게 보급되어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