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부채(대원선)

추천0 조회수 53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부채(대원선)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개설> 부채란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게 하는 기구이다. 부채는 가는 대오리로 살을 만들어 넓적하게 벌려서 그 위에 종이나 헝겊을 바른 것으로써 무더위에 바람을 일으켜 시원하게 하는데 사용된다. <역사> 부채는 ‘부치는 채’라는 말인데‚ 이 말이 줄어서 ‘부채’가 된 것이다. 부채를 한자어로는 ‘선자(扇子)’라고 한다. 고려 때 송나라 사람 손목(孫穆)은 [계림유사 鷄林類事]에서 우리말의 부채를 표기하여 “선왈부채(扇曰厄采)”라 하였다. 16세기 조선 중종 때 사람 최세진(崔世?)의 [훈몽자회]와 한호(韓濩)의 [천자문]에는 ‘선(扇)’을 ‘부체 션’이라 하였음을 보아 고려 및 조선시대에도 부채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부채는 중국 진(晉)나라 때의 학자 최표(崔豹)의 [고금주 古今註]에서 중국의 순(舜)임금이 오명선(五明扇)을 만들었다 하였고‚ 초량선(招凉扇)은 주나라 무왕이 만든 것이라 하였다. 또 회선(檜扇)이라는 부채가 있는데‚ 이것은 회나무 껍질 25개를 엮어 만든 것으로서 흰 종이로 바르고 그 위에 등꽃모양을 놓아 띠같이 만들었다고 하였다. 일본 부채는 본래 회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종이부채는 그 뒤 회선에서 전작(轉作)된 것이라 하였다. 회선의 창제 연대에 대하여서는 문헌상의 기록이 없으므로 불분명하나 나라시대(奈良時代)의 초기에는 아직 부채가 발명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문헌 가운데 부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견훤조에 “우리 태조를 추대하여 즉위하였다. 견훤은 이 말을 듣고 그 해 8월에 일길찬(一吉飡) 민극(閔筐)을 파견하여 이를 하례하고 드디어는 공작선(孔雀扇)과 지리산 대화살(竹箭)을 보냈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는 10세기(고려 초)에 이미 부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작선은 남방의 여러 나라에서도 공작의 깃으로 둥근 부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견훤이 하례품으로 주었던 공작선도 둥근 부채(방구부채)였다고 보인다. 접는 부채(접부채)가 우리나라에 있은 기록은 송나라 사람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 圖怜見聞志]에 고려사신 최사훈(崔?訓)이 1076년 신종 희녕 병진년(문종 30)에 접는 부채(摺疊扇〕를 사용하였다고 한 것을 보아‚ 접는 부채가 11세기 중엽에는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채는 대형 부채에 종이를 붙인 후 중앙에 태극 문양을 붙이고 윗 부분에는 꽃 그림을 그려 넣었다. 사복 부분에 종이를 겹쳐 붙여 튼튼하게 하였고 자루는 2개의 금속 못과 나비 문양의 금속 장식 붙였다. 자루에는 흑칠을 하였고‚ 끈이 달려 있던 흔적이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 조선왕조실녹‚ 고려도경‚ 오주연문장전산고‚ 열하일기‚ 청장관전서‚ 경도잡지‚ 렬양세시기‚ 동국세시기‚ 한국부채의 연구(최상수‚ 대성문화사‚ 1972)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