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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낙남헌) (華城行宮(洛南軒) ‚ Hwaseonghaengg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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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화성행궁(낙남헌) (華城行宮(洛南軒) ‚ Hwaseonghaenggung )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 개요 >
화성행궁 (華城行宮)은 정조가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소에는 부사(府使) 또는 유수(留守)가 집무하던 곳으로 활용되던 곳이다. 화성 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행궁 중 규모면에서 가장 크며‚ 성곽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목조와즙(木造瓦葺)에 팔작(八作) 지붕으로 된 단층한식 건물로 초익공식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는 62평의 전각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다. 또 1790년에서 1795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다. 그 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다.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유수가 집무하는 내아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1789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 이후 이듬해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을 거행하였다. 이때마다 정조는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치루었다. 뿐만 아니라 정조가 승하한 뒤 1801년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하였고 그 뒤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화성행궁은 일제 시기 이후 갖가지 용도의 건물로 이용되면서 그 모습을 잃게 되었다. 1995년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1996년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97년 봉수당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2006년에는 행궁앞 광장부지에 대한 시굴조사가 이루어져 명당수 호안석축과 신풍교 교대지가 확인되어 2007년에 새롭게 복원이 이루어졌다.
행궁(行宮)에는 장락당을 비롯해서 봉수당‚ 경룡관‚ 복내당‚ 유흥택 로래당‚ 득중정‚ 신풍루행각남북군영행각‚ 외정리소‚ 강무당행각‚ 무고행각‚ 수성고(修城庫) 집사청‚ 서사청(書史廳)‚ 비장청‚ 후화관‚ 좌우문‚ 중앙문‚ 별주(別廚)등 많은 건물이 있다.
낙남헌(?南軒)은 1794년에 완공된 건물로 1795년의 행차시에 각종 행사가 이곳에서 치러졌다. 기타정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kcti.re.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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