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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용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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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청화백자용문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3-25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원천문양 설명]머리는 뱀의 모양을‚ 뿔은 사름‚ 눈은 귀신‚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한다. 용은 모든 자연현상을 주재하는 동물이다. 때문에 용은 만물 조화의 능력을 갖춘 신령스러운 영물‚ 권위의 상징‚ 그리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과 수호의 능력을 갖춘 영험한 동물이었다. 민속을 통해서 보면‚ 홍수와 가뭄을 주재하는 수신으로서의 용‚ 바다에서 항해와 조업을 주재하는 해신으로서의 용‚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 진경의 능력을 지닌 용이 있으며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서의 용이 있다. 여기에서는 불법을 수호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용의 다양한 성질과 신비한 능력에 의탁하여 그들이 바라는 바가 성취되기를 빌었다. 무속에서는 용을 수신으로 섬기면서 풍요와 안전을 빌었고‚ 궁중에서는 용을 임금의 권위에 비유하여 여러 장식 문양으로 활용하였으며‚ 민간에서는 용 그림을 대문에 붙여놓고 용의 능력을 빌려 잡귀신을 물리치고자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문방구 등 매우 넓은 영역에 걸쳐 길상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구름은 장수와 함께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옛 사람들은 구름이란 천신이나 신령들이 타는 것일 뿐 아니라 만물을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 여겼다. 또 세속을 벗어나서 상서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용이나 학과 같은 상서로운 동물과 함께 나타내는 예가 많았다. 구름의 형태는 크기와 색깔이 모두 달라서 정형화된 형태가 없으며 십장생의 하나로 단독으로 쓰이지는 않았으며 다른 길상 문양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예가 많다.[원시문양 설명]청화백자(靑華白磁)는 백토로 그릇 모양을 만들고 표면에 회청(回靑) 또는 토청(土靑)이라 불리는 안료로 여러 가지 무늬를 그린 다음 그 위에 순백의 유약을 씌워 맑고 고운 푸른색의 무늬가 생기게 만든 자기이다. 청화백자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것은 1428년(세종 10) 명나라에서 보내온 것이며‚ 청화백자를 번조(燔造)하기 시작한 것은 1457년(세조 3) 중국에서 회청(回靑)이 수입된 뒤부터이다.「세조실록」에 의하면 1465년(세조 11)에 최초의 제품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번조되었다. 이것은 청화백자 항아리로 짧은 목에 어깨부분을 중심으로 부풀어 오른 형태이다. 목에는 덩굴무늬를 그려 넣고 어개에는 연판문을 돌렸다. 몸체에는 구름·용무늬를 그려 넣었으며 아랫부분에는 이중연판문을 돌렸다. 덩굴은 한자 표기로 당초(唐草)라 표기하는데‚ 당초는 ‘당(唐)나라 풍의 덩굴무늬’를 가리킨다. 당초라고 하는 용어는 원래 겨우살이덩굴(인동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인동초(忍冬草)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등지의 산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우살이 덩굴식물이다. 이 덩굴은 겨울을 견뎌낼 뿐만 아니라 덩굴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뻗어나가기 때문에 장수와 대(代)를 이음을 상징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도자기에는 청화(靑畵) 또는 철화(鐵畵)‚ 진사(辰砂)‚ 상감(象嵌) 등 시문기법으로 묘사한 회화풍의 덩굴문이 성행되어 소박한 민화적 장식 의장 문양의 성격으로 나타난다. 연판문은 연꽃의 꽃잎을 펼쳐 놓은 모양을 도안화시켜 연속무늬를 구성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형태는 주로 도자기의 어깨부분이나 굽 혹은 저부의 둘레에 사용되었는데 이는 연꽃이 지닌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즉 도자기 등 그릇의 둘레에 연판문양이 들어감으로써 그 물건의 비범성과 청정함을 나타내어 일반의 비속한 존재와 구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판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삼국 시대에 불교미술이 시작되고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문양화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다. 범종을 비롯한 각종 불구류(佛具類)와 사리 장엄구‚ 향로‚ 동경 등에서 다양한 연판의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형식은 고려시대에 와서 단조로운 선으로 표현되어 더욱 간결해진다. 연꽃은 옛날부터 생명의 창조‚ 번영의 상징으로 애호되었는데 그 이유는 연꽃의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한편 불교에서는 연꽃을 청결‚ 순결의 상징물로 여겼는데 그것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연못에 물들지 않는 속성에 기인하고 있다. 연꽃의 이런 속성을 불교의 교리와 연결시켜 초탈(超脫)‚ 보리(菩提)‚ 정화(?化) 등 관념의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또 연꽃은 환생을 상징한다. 우리 판소리 심청가에서도 심청은 인당수에 빠졌다가 큰 연꽃 속에서 환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용은 모든 실제 동물과 상상 속 동물들의 능력과 장점을 취합하여 만들어낸 동물이다.개별문양구름문구름문연판문연판문용문구름문구름문연판문연판문덩굴문용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s://www.kcisa.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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