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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말레이시아의 ‘펠다 운동’을 비교‚ 연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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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말레이시아의 ‘펠다 운동’을 비교‚ 연구하고 싶어요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3-09-1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비둘기 빛 히잡을 쓴 누리아나 카마루딘(30)씨‚ 마냥 밝은 얼굴이다. 그는 말레이시아 말라야 대학의 아시아-유럽연구소 연구원.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이사장 유현석)의 동남아 주요 대학의 한국학 교수요원들에 대한 장학지원 프로그램인 ‘KF 아세안 펠로십’ 에 선발 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학 박사 과정에 다닐 예정이다. 한국 유학은 이번이 두 번째. 학사(이화여대)· 석사(연세대)를 한국에서 마친 후 귀국했다가 2년 만에 온 것이다. 반가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이유다. 지난 8월 10일 서울에 도착해 개강 준비 등으로 분주한 카마루딘을 8월 26일 오후 한국국제교류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Q.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2005년 이화여대에서 열린 국제 영어토론대회에 참석했다가 이대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이화 글로벌 파트 프로그램(EGPP)’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2006년 이대 국제학부에 등록했고‚ 이대를 졸업한 뒤 2008년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 과정까지 하게 됐다.”
카마루딘은 영어와 토론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고등학생 땐 국가대표로 프랑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의회’에 참석했을 정도란다.
Q.국제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말레이시아의 테크놀로지 마라 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토론대회를 준비하다 보니 자연히 국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말레이시아의 국제학 연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정학적 위치나 근대사 경험 등에 비추어 한국에서 국제학을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다.”
그는 대학을 마친 뒤 온라인 영화잡지의 기자로 활동하다 유학을 결심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말레이시아에선 드문 일이 아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겠다 싶기도 했고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희박해서 다니던 회사에서도 권장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Q.유학생활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잡지사에서 영화를 포함한 연예기사를 쓰면서 K-pop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이 있긴 했지만 한국어는 ‘고마워요’ 등 몇 마디밖에 몰랐다. 당연히 쉽진 않았지만 기숙사에서 지내고‚ 영어 강의가 많아 견딜 수 있었다. 이대 국제학부나 연대 국제대학원엔 외국생활을 한 학생이나 외국학생들이 많은 것도 도움이 됐고.”
카마루딘은 이대에선 자신이 나이가 많은 편이라 영어동아리 친구들이 ‘왕언니’라 부르며 여러 가지로 배려를 해주었다며 웃었다. 또 연대에선 친구들 중 절반이 외국인이었을 정도로 ‘세계화’되어 있었다나. 학창시절 농구선수로도 활약하는가 하면 킥복싱도 배웠다는 그는 분당에서 때때로 승마를 즐기며 향수를 달랬다고 했다.
Q.말레이시아와 한국의 대학생활을 비교하자면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단지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 국가이기에 친구들끼리 모이더라도 대부분 술은 마시지 않으며 설사 마신다 하더라도‚ 큰 비중을 차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홍익대 앞 젊은이문화에 대해 묻자 “가 보긴 했지만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즐기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 친구들과는 함께 식사하고 노래방 가는 정도라고 .
그러면서 이슬람 율법 할랄(Halal)에 맞는 음식을 찾기 힘들어 아쉬웠다고 했다.
Q.박사 과정에선 어떤 분야에 초점을 맞춰 공부할 계획인가
“이전엔 국제협력이나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말레이시아의 ‘펠다 운동’을 비교‚ 연구하고 싶다. 근대화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이 비슷하기도 하고‚ 아직 말레이시아에선 ‘펠다운동’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에 한국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군 점령하의 말레이시아와 일제 식민지 치하의 한국‚ 한-말레이시아 양국의 경제발전 모델은 물론 말레시아에서의 K-pop 마케팅 등 다양한 주제를 파고들었다는 그녀의 관심 분야는 다양하다. 박사 학위를 마치는 데 2년을 예상한다는 그에게 이후 계획을 물었다.
“말라야 대학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젊은 세대의 성장을 돕는 것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교육이 이를 위한 지름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개발 연구는 선진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에 의미 있는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안정된 생활을 떠나 학업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2년 새 서울의 대중교통비와 음식값이 꽤 오르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 놀랐다고 했다.
한국생활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을 묻자 ‘아프리카가 어떤 나라냐’고 진지하게 묻는 한국친구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그런데 이젠 남대문 시장에 가면 말레이시아 어로 인사를 하는 노점상이 있을 정도”라고 감탄했다.
한국인들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란 평에 대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비슷하다” 하기도 하고‚ 제주도가 말레이시아 휴양지 코타키나발루보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 지한파(知韓?) 여성의 한국에 대한 인상이 지속되었으면 싶었다. 아울러 그가 귀국해서 말레이시아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며 양국 교류의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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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저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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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연계 URL
https://www.k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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