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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암고택 (良? 謹庵 古宅)_문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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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양동근암고택 (良? 謹庵 古宅)_문간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양동근암고택에 대한 설명입니다.양동 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로‚ 넓은 안강평야에 오랜 전통을 지닌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집은 이정수 선생이 세웠다고 하는데 5대손 이희구가 홍릉참봉을 지냈기 때문에 '참봉댁' 또는 '근암고택'이라고도 한다.
조선 정조 4년(1780)경에 지었다고 하며 일반적인 'ㅁ'자 평면을 따르지 않고 주거 공간의 기능에 따라 배치를 다르게 꾸미고 있다.
집의 구성은 크게 대문채‚ 안채‚ 사랑채로 구분할 수 있다. 대문채는 'ㅡ'자형 평면으로 가운데 대문을 두고 왼쪽에 광‚ 오른쪽에 방을 두었다. 안채는 'ㄱ'자형 평면이고 면이 꺾이는 부분에 부엌을 두었다. 부엌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안방과 대청‚ 건넌방‚ 마루방을 놓았으며 부엌 밑으로 2칸짜리 방과 1칸 방을 만들었다. 안채 옆에는 앞면 4칸·옆면 1칸 크기의 헛간을 지었는데 지금은 외양간으로 쓰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 담밖으로 떼어놓아 중부지방이나 호남지방에서도 보기 드문 배치방식으로 꾸몄다. 이는 집주인의 전통 남녀유별 사상이나 생활관이 작용한 결과로 짐작하는데 방 2칸과 대청 1칸의 작은 크기로 간소하게 만들었다.
대체로 소박하고 간소하게 지은 집으로 주거 공간의 기능에 따라 구성을 달리 배열한 특색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어 가치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지정 당시 명칭은 '양동이동기가옥(良?李東琦家屋)'이었으나‚ 조선 정조 4년(1780)에 태로 이정수가 지었고‚ 그의 4대손인 홍릉 참봉 이희구의 호를 따라 '근암 고택'이라 불려지고 있어 ‘양동 근암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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