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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축성비 (萊州築城碑)_내주축성비(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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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내주축성비 (萊州築城碑)_내주축성비(뒷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내주축성비에 대한 설명입니다.이 비문은 1731년(영조 7)에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비명에 의하면‚ 읍성은 둘레가 936cm‚ 높이가 3.9m였다. 1731년에 성터를 측량하고‚ 경상도 65개 군에서 52‚000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연인원 417‚050명‚ 쌀 4‚585석‚ 베 1‚552필‚ 전(錢) 13‚454냥으로 4월에 성벽을 축조하였다. 이어 5월에 성문‚ 7월에 문루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때 완성된 성은 둘레 약 3.8㎞‚ 높이 5.1m이었다.
비문의 앞면에는 축성에 관한 사실을 20행으로 기록하고‚ 뒷면에는 축성에 종사한 임원의 명단을 새겨놓았다. 비의 높이는 270cm‚ 넓이 107cm의 큰 비이다. 비두(碑頭)는 한 쌍의 이수( 首)가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비대(碑臺)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데‚ 소박하다. 비문은 황산도 찰방 김광악(金光岳)이 짓고‚ 송광제(宋光濟)가 썼으며‚ 전자(篆字)는 현풍현감 유우기(兪宇基)의 글씨이다.
이 비석은 동래성 연구의 정확한 자료가 되며‚ 조선 후기 축성사(築城史)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본래 이 비는 동래성 남문 밖에 세운 것인데‚ 일제시대에 금강공원 내 독진대아문 뒤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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