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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 (陰城 權近 三代 墓所 및 神道碑)_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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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 (陰城 權近 三代 墓所 및 神道碑)_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에 대한 설명입니다.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이며 학자였던 양촌(陽村) 권근(1352∼1409)과 선생의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의 3대묘이다.
선생은 공민왕 17년(1368) 성균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공민왕(재위 1352∼1374)이 죽자 정몽주·정도전과 함께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고 창왕 2년(1389)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태조 7년(1398)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후에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대제학을 거쳐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문장이 뛰어나『동국사략』등 조정의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권제(1387∼1445)는 권근의 둘째 아들로 우찬성의 벼슬에 올랐고『고려사』편찬에 참여 했으며『용비어천가』를 지었다. 권람(1416∼1465)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학문이 뛰어났고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여러 차례 세조를 도와 공을 세운 덕으로 좌의정의 벼슬까지 올랐다.
3기의 묘앞에 모두 각각 묘비‚ 장명등(長明燈:무덤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 문인석 1쌍이 세워져 있고‚ 봉분은 모두 원형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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