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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덕정리 정세필 묘비 (陜川 德亭里 鄭世弼 墓碑)_정세필 묘비(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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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합천 덕정리 정세필 묘비 (陜川 德亭里 鄭世弼 墓碑)_정세필 묘비(후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합천 덕정리 정세필 묘비에 대한 설명입니다.林軒 鄭世弼(1494~1566)은 포은선생의 5대손으로 莊陵의 유신 설곡공 保의 증손이다. 1534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여러 州郡의 守令을 거쳐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公은 관직의 재임 시에는 ?白吏로도 유명하였고‚ 퇴계 李滉 · 덕계 吳健과 교류하여 道義의 벗을 삼았으며‚ 영일정씨 초간본 족보인 「嘉靖癸丑譜」(1553)를 발행하였는데‚ 이 족보는 안동권씨 「成化譜」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족보이다.
일찍이 명마 한필이 있었는데‚ 당시의 세도가이었던 윤원형이 탐내어 사람을 시켜 그 말을 높은 벼슬로써 유혹하니‚ 公이 정색하여 말하기를 “대장부하는 일이 저 靑?白日과 같거늘 내 어찌 말(馬)로써 벼슬을 바꾸리오.” 하고 그 날로 말의 목을 베고 남쪽으로 내려와 林壑 속에 묻혀 살면서 自號를 林軒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그 斬馬劍이 ?山影堂에서 보관되고 있어 門中의 귀중한 유물로 삼고 있으며 林軒實記 1책도 전해지고 있다.
明宗 21년 병인(1566)에 73세로 돌아가시니 왕께서 애통하여 禮官 李期男을 보내 致祭하였다. 賜祭文에 이르기를 “엄숙히 생각하니 포은선생은 충절로써 고려의 망함을 항거했네. 나는 그의 雲孫이 벼슬에 나아감을 기뻐하도다. 벼슬은 武階에 있었지만 성품은 蔓托하지 않았네. (中略) 그대의 부음을 들으니 나의 슬픔이 크도다. 文忠公도 돌아가시니 재상의 나열에 누가 있으랴.” 하였다.
묘비의 총 높이는 175cm이며‚ 碑身은 청석으로 높이는 112cm‚ 너비는 46cm‚ 두께는 13cm이다. 碑座는 자연석의 평범한 가공으로 두께는 20cm이고‚ 碑首는 황등석 석질로 높이는 58cm에 너비는 77cm이다.
前後面이 다르게 蓮辦雲紋을 둘렀으며‚ 양쪽으로 未開의 蓮葉모양에‚ 정수리는 연꽃봉우리 모습이다. 前面에는 四葉半開의 一莖이 서있고‚ 양옆에는 蓮峯이 물결위로 솟아나는 仰蓮辦紋이다. 後面에도 역시 중앙으로 蓮花一朶가 있고‚ 左右에는 雲紋위로 蓮實 2개가 양각되어 있어 首나 蟠龍과는 다르게 蓮花를 위주로 한 碑首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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