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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 의암사(논개사당) (論介祠堂 ‚ Euiam ju Non-gae shr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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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논개 - 의암사(논개사당) (論介祠堂 ‚ Euiam ju Non-gae shrine )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9-0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 개요 >
의암사의 면적은 214‚632㎡(65‚040평)로 의암사 경내에는 영정각‚ 충의문‚ 내·외삼문‚ 비각‚ 기념관‚ 의암사 휘호 등이 있으며 朱論介님의 영정과 촉석의기생장향수명비가 모셔져있다. 그밖에 의암호를 비롯한 군민 휴식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장수읍 두산리의 남산 기슭에 위치한 논개의 사당으로 지방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영정각에는 논개의 영정(김은호 화백 작)이 있고‚ 외삼문과 내삼문‚ 충의문이 차례로 있다. 기념관에는 논개의 유품과 남편 최경회 장군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논개는 선조 26년(1593년) 임진왜란시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 남편 최경회‚ 김천일‚ 고종후 장군 등이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자‚ 남편의 원수를 갚고 국치를 설욕하고자‚ 촉석루에서 벌어진 왜군 승전잔치에 기생을 가장하고 참석‚ 주흥에 도취된 왜장을 남강가 바위로 유인‚ 그의 허리를 껴안고 함께 강속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논개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여‚ 의암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진주 촉석루 곁에사액정문을 지어 그 넋을 위로‚ 추모하게 하였고‚ 투신한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1846년 장수 현감 정주석이 주논개의 충절을 찬양하며 논개생장향수명비를 세운후 1955년에 남산에 사당을 건립하여 의암사라 칭하고‚ 논개의 영정을 모셨으나‚ 1974년에 현 위치로 옮겨왔다. 매년 음력 9월3일에는 의암주논개대축제가 열린다.
< 규모 >
ㅇ 면적 : 214‚632㎡
< 유래 및 연혁 >
ㅇ 1846 논개생장향수명비 건립
ㅇ 1955 사당건립
ㅇ 1974 이건
< 주요시설 >
ㅇ 영정각‚ 충의문‚ 내·외삼문‚ 비각‚ 기념관 등 기타정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kcti.re.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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