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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외암마을 (牙山?岩마을 ‚ Asan oeam Vill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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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아산외암마을 (牙山?岩마을 ‚ Asan oeam Village )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9-0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 개요 >
설화산의 서쪽에는 충청도 양반 마을을 대표할 만한 마을이 있으니‚ 곧 외암민속마을이다. 본래 이웃역말인 시흥역이 있어서 말을 먹이던 곳이라 하여 오양골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구에 수구막이 기능도 겸하는 마을숲은 큰비가 내리면 강당골과 설라리에서 흘러내려 온 두 개울물이 합하여 넘실댄다 하니‚ 이곳 반계(磐係)는 풍수에서 말하는 마을의 수구(水口)가 된다. 반계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강당골 유원지가 나오는데 외암선생이 후학들을 가르키는 터로 삼았던 석문용추(石門龍湫)이다. 지금도 관선재(觀善齎)의 바깥채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고종때 서원을 없애려는 소용돌이를 피해 불교사찰로 모습을 바꾼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선생이 가르칠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외암서사(巍巖書社)'편액은 외암마을 건재고택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용추로 가는 길목에는 외암마을이 예안이씨 집성촌이 된 유래가 있다. 이사종(李嗣宗)이 평택 진씨 참봉 진한평(陳漢平)의 사위가 되어 이 곳에 들어온 것이 연이 돼 이사종은 봉수산에 서친의 묘를 정하고‚ 마을 밖에 정자를 세워 '열승정(閱勝停)'이라 하였다 한다. 정자는 오래전에 없어졌지만‚ '열승쟁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전해지며‚ 그 기문(記文)또한 건재고택에 온전히 남아 있다. 마을 정면의 야트막한 산은 면잠산(眠蠶山)이다. 주민들은 흔히 '먼적산'이라고도 하는데 주변 산악 가운에 가장 먼저 떠내려와서 머물렀다 하는 이야기도 전한다. 기타정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kcti.re.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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