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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冷? ‚ Cheongnyeongp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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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청령포 (?冷? ‚ Cheongnyeongpo )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9-0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 개요 >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남한강 상류에 있다. 강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륙봉(六六峰)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1457년(세조 3) 6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겼다. 단종은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두어 달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워낙 지세가 험하고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단종이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했다고 전한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 주는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와 어가‚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 외인의 접근을 금하기 위해 영조가 세웠다는 금표비(禁標碑)가 있고 관음송(천연기념물 349)과 울창한 소나무숲 등이 남아 있다.
ㅇ 개장시간 : 09:00 ~ 18:00
< 규모 >
ㅇ 면적 : 204‚241㎡
< 유래 및 연혁>
ㅇ 1971. 12. 16 강원도기념물 제5호 지정
ㅇ 2008. 12. 26 명승 제50호로 변경
< 주요시설 >
ㅇ 금표비
이 비석에는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 기록되어 있다. 강봉된 노산군이 이 청령포에서 동서로는 삼백 척을‚ 남북으로는 사백 구십 척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른바 행동 반경을 제한하는 금지령 팻말인 것이다.
ㅇ 망향탑
청령포 뒷산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대왕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ㅇ 관음송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서편에서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 30m‚ 가슴높이의 둘레 5m로 지상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3.3m‚ 남북 20m로 가지를 펼치고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하여 계산된 것이다. 기타정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kcti.re.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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